상담일기 14화: [과거의 조각]_3

갑자기 찾아온 부고(1)

by 당근

괜찮지 않다는 자각과 함께 밀려든 우울감은 나를 집어삼켰고, 대학생활 내내 얼이 빠진 사람처럼 지냈다.

무게추를 단 것처럼 몸이 무거웠고, 마음은 그의 몇 배나 되는 철근을 올려둔 것처럼 가라앉았다.


곤죽이 된 몸과 마음을 억지로 붙들고, 최소한의 기능을 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우울감과 동시에 불안한 증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업을 듣거나,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숨이 차올랐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무언가 단단히 이상했지만, 내가 고장 났다는 걸 남들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그동안 외면하고 살았던, 수많은 트라우마와 부정적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내내 재생되며 발목을 붙잡았다.

지겨웠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이쯤 되면 실패한 인생이 아닐까. 그냥 그만 사는 게 가장 편할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다.


동시에, 망설여졌다.

사라지는 것마저 애매하게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주변에 나의 우울증이 알려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이도 저도 아닌 낙오자가 될 것이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면 차라리 남들에게 티 내지 말자는 생각에, 지옥 같은 마음을 억누르며 하루를 살아냈다.


모순과 양가감정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어찌할지 모른 채.


그 시절의 나는 술과 친구였다. 남들 앞에선 참아내느라 단단히 닫아두었던 빗장이, 술에 취하고 나면 느슨하게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으므로.

건강치 못한 방식이었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는 걸 결국엔 깨달았다.

우울의 늪에서 충동적으로 저질렀던 행동들은 나를 다치게만 할 뿐이었으며, 내가 그토록 원하는 '후련함'과는 거리가 먼 감정들 뿐이었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야 했으므로. 살기 싫다며 떼를 쓸수록 결국엔 똑같은 하루를 더 무겁게 살뿐이었다.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고, 행동의 노선을 바꿔 회복을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는 데까지는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렸다.

좋다는 책도 찾아 읽었고, 주변에 좋은 선배들을 만나 상담도 했고,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가기도 했다. 몇 번에 그치긴 했지만.

답답한 속을 풀어내고자, 술을 마시는 대신 메모장을 켜고 필터링 없이 내 마음을 막 쏟아내기도 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내 우울은 아주 천천히 잦아들었다가, 어떤 날에는 다시금 부피를 키워 나를 짓눌렀다.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반복되며 감정이 재발했을 뿐 드라마틱하게 호전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가라앉은 상태에 점차 익숙해졌고, 우울을 완전히 벗어나기보단 극단적인 선을 넘지 않으며 적당히 동행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사색하면서..


이런 치열한 내면의 전쟁을 치르는 동시에, 외적으로는 대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했고, 졸업과 동시에 병원에 취직하여 바로 일을 시작했다.

점차 우울을 다루는 법에 익숙해지며, 이제는 좀 괜찮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겼던 그때, 한 가지 사건이 터졌다.


병원에서 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늘 그렇듯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일을 메꾸고 있을 때, 별안간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보통 모르는 번호는 안 받는 게 상책이지만, 일을 하다 보면 각종 업무 전화를 받는 게 일상이라 '바쁜데 누구야'하고 투덜거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OOO 씨 되십니까?"

"네. 맞는데요."

"00 경찰서입니다. 잠시 통화 괜찮으십니까?"


익숙한 레퍼토리에, '보이스 피싱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끊을지 타이밍을 재며,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다음에 나온 말은, 내가 예상한 대본과는 달랐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아버님께서 자택에서 혼자 돌아가신 채로 발견이 되셨습니다.."

"예? 그럴 리가요. 저희 아빠는 집에 가족들이랑 계실 텐데요.??

"... 예...?"

"혼자 계시다 그렇게 되실 리가 없어요..."

"실례지만, 아버님 성함이 OOO 씨 아니십니까?"

"아....."


아 맞다. 그런 사람도 있었지.

라는 게 당시 내가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다. 연락이 끊긴 지 십 년도 더 된 사람인데.


"예 그러면, OOO 씨가 본인의 아버님 맞으신 거죠?"

"네 일단은.. 네."

"많이 혼란스러우시겠지만, 돌아가시고 시간이 좀 지난 뒤 발견이 되셔서, 저희가 사인을 수사 중인 상황입니다. 그리고 고인 확인을 위해, 친보호자분께서 직접 오셔서 유전자검사 등 여러 조사를 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 네. 해야죠. 언제 가면 되나요?"

"오늘 오실 수 있으시겠어요? 이게 조사를 빨리 진행해야 수사를 할 수 있어서.."

"일단 제가 근무 중이라, 좀 더 알아보고 이 번호로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통화가 끊어졌다.

당시 전화가 걸려온 지역은 서울이 아니었고, 당장 출발한다고 해도 저녁에나 도착할 것이다.

그보다도, 일단 근무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언젠가 일이 이렇게 될 것 같단 생각은 들었지만, 그게 하필 지금이라니.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일을 쳐낼 걱정을 하고 있던 내가, 이제는 그런 건 아무 상관없게 되어버렸다.


일단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서, 시니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하필이면 나와 앙숙인 사람이었다.

어떻게 말해도 꼬아 들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근무 도중에 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말을 포장하기가 더 어렵겠다는 결론이 났다.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레 대화를 청한 뒤, 사정을 털어놓았다.


"방금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같이 사는 분은 아니고 연락이 끊긴 분인데..

일단 수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될 수 있으면 빨리 오라고 하는데요. 혹시 오늘만 중간에 퇴근할 수 있나

해서요.."


라는 말을 할 동안, 그분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였던 건 내 기분 탓이었을까..?

내 말을 흥미롭게 듣던 그분이, 이렇게 답했다.


"음, 근데 가는 건 가는 건데, 지금 일도 남아있고, 이런 상황에서 중간에 가게 되면 파트장님한테도 연락 돌려야 할 텐데. 그러면 부서에 소문이 싹 다 퍼지지 않겠어? 차라리 내일 가도 되냐고 물어보지?"


"아..... 그런가요.... 말이 퍼지면 곤란할 것 같긴 해요."


"그렇지. 너 지금 중간에 가면 이 얘기 설명하다가 다들 알게 될걸..? 차라리 내일 가. 지금은 일이 남아있으니까."


"하... 그러면 일단은.. 네. 다시 전화해 볼게요."


형사님과 다시 통화한 결과, 조사에 참여하는 건 다음날로 미뤄졌다.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야 해서 근무시간을 맞추기 어렵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파트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사정을 잘 헤아려 주셔서 며칠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퇴근길에 본가에 전화해 이 사실을 알렸고, 내일 경찰서에 방문해 조사를 받는 동안 부모님도 와 계시기로 했다.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왠지 지금이 현실같지 않아 붕 뜬 기분이었다.

이제야 좀 잘 지내보려고 하는데, 왜 또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인생 처음으로 형사에게 조사를 받는다니. 그것도 누군가의 죽음과 관련해서.

그런데 그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내 가족이라니.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