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일기 12화: [과거의 조각]_1

어린아이에서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by 당근

자극적인 사건 묘사는 되도록 줄이고 순화하여 필요한 만큼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트라우마를 재경험할 위험을 줄이기 위함도 있고요.

제 글의 취지를 생각해 보면, 과거의 아픔을 너무 선명하게 들여다보기보단, 앞으로의 성장과 치유에 필요한 정서를 찾아내는 게 필요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ㅎㅎ 천천히 시작해 볼게요


이전 글에서 짧게 언급했듯, 나는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커가면서 조금씩 형편이 나아졌지만, 한창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제대로 못 먹는 것이 당연했다.

영문도 모른 채 이 동네, 저 동네로 이사를 다니느라, 내내 전학생 신세를 면치 못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건 섭섭했지만, 때가 되면 바뀌는 집과 학교가 그저 익숙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돈을 벌러 나가셨을 때는, 오랫동안 홀로 집을 지키곤 했다.


단편적으로 기억나는 건, 과자를 먹고 싶다고 졸랐던 적이 있었는데, 며칠 뒤에 부모님이 작은 병에 든 굵은소금을 주신 적이 있었다.

과자는 주지 못하지만, 너무 먹고 싶을 때마다 아주 조금씩 먹으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그것마저도 '군것질'에 해당하는 먹을거리였다.

소금을 한 알씩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짠맛이 대부분이었지만 왠지 고소(?)하다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내 착각이었겠지만..


그러다 소금을 너무 많이 먹어버려, 배탈이 나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당황한 채, '그러게 조금만 먹으라고 했잖아!' 라며 화장실에서 울던 나를 달래주셨다.


비슷한 일로는,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과일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부모님은 난감해하다가, 당시에 살던 집 앞 나무에 꽃사과가 열려있던 걸 떠올리셨다.

집 근처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꽃사과 몇 개를 따더니 집에서 씻고는 먹어보라고, 사과 맛이 날 거라고 하셨다.

많이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배탈이 난다고..

신기하게도, 진짜로 사과 맛이 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도 배가 아팠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집이 어려웠던 건, 나에게는 그리 힘든 기억은 아니다.

집안 사정에 대해 공감하며 가슴 아파하기엔,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으므로.

고생은 부모님이 다 하셨으니까.


그렇지만, 정말로 아팠던 기억은 부모님이 서로 다투었던 날들이었다.


솔직히, 분위기가 좋았던 날이 기억나지 않는다.

항상 눈치 보았던 기억밖에 없다.

그분들은 늘,

서로 화내다가, 울다가.. 잘 지내는 듯하다가..

반복이었다.


다툼 끝에 두 분 중 한 명이 집을 며칠 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덜덜 떨며 잠을 못 자고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 와중에 일기 쓰기 숙제가 있어서, 순진하게도 'OO가 집을 나가셨어요'라는 내용을 그대로 썼다가 혼이 났었다.

혹시라도 다시 돌아올까 봐, 그런데 열쇠가 없어서 못 들어올까 너무도 걱정되었다.

바람이 불어 문이 약간이라도 덜컹거리면 화들짝 놀라 방 밖으로 나가선 현관 앞에서 조용히 '오셨어요?' 하고 불러보곤 했다.


그마저도 금방 들켜서, 그만하고 자라는 호통을 들었지만.

혼나는 무서움보다,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이 더 컸기에 나중에는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 생략하고, 문 앞에 서있다 들어왔었다.


어쩔 땐, 이웃 주민들이 보는 데서 싸울 때도 있었다.

부끄러웠다. 아닌가, 부끄러웠다기보단 당혹스러웠다.

우리를 보는 시선이, 혀를 끌끌 찼다가, 동정 어린 눈이었다가..

'방금 전까지는 분명 분위기가 괜찮았던 것 같은데.. 왜 또다시..'


자세한 상황은 기억 안 나지만, 여전히 뚜렷하게 뇌리에 박힌 한 장면이 있다.

나는 방문을 닫고 이불 위에 앉아있었고, 거실에선 한 바탕 큰 소리가 났다.

곧이어 울음소리가 났고, 엄마가 방에 들어와선 오열하며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살 바엔 다 같이 죽자"

라고.

당연히 싫고 무서웠던 나는,

"싫어요, 저는 살고 싶어요."라며 애원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몇 살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때의 기억이 뚜렷하게 남은 건, 그만한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무서웠다.

내 세계의 전부인 부모님이, 나에게 삶을 포기하자는 말을 한다는 게.

당시의 나는, 이제 막 살아가는 기쁨을 배워야 할 시기였는데.


그런 와중에도 신기하게 동생이 태어났다.

나와 나이 터울이 6살이나 되었다. 나도 어렸지만, 동생은 나보다 훨씬 더 어린 아기였다.


한편으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안의 가장 어두울 시기에, 덩달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어린아이여서.

그래도 부모님이 동생은 잘 돌보시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의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고, 가정 형편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끔이지만 외식도 할 수 있었다.


나머지 기억은 뚜렷하지 않은 걸 보니, 그럭저럭 평범하게 지내왔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이런 생활이 익숙해져 '일상의 범주'에 넣어버렸거나.

또는, 그저 잊고 싶어서 잊어버렸거나.


어느 쪽이든,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마 현재의 내가 '위험회피'와 '안전추구' 성향이 높은 것은 이 시기의 영향이 클 것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시기에, 안전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은 불안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예민한 성향을 타고나 이만큼 발달하게 된 것도 이때의 영향이 적잖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달리 타인의 감정을 잘 살피고 알아차리는 것도, 소음과 많은 인파, 강렬한 빛 등을 기피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당시의 난, 끊임없이 부모님의 기분을 살펴야 그나마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으므로.

또한 예민함이 깊어지면서 감각도 덩달아 기민해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난 예민한 성향을 직업적, 사회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으니, 불편함보다는 만족감이 더 크다.)


또한, 나의 가장 큰 고민인 '회피성 성향'도 이때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내 의견을 표현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도 아니었고(당시 가정 분위기도 그랬지만, 워낙 엄하게 자랐다.) 첫째로서 동생을 챙겨야 하고, 의젓하게 자라야 한다는 의무감에 반항 한 번 안 한 채 순응하며 살아왔다. 불편함이 있어도 입을 꾹 다물었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지내는 것이 익숙했다.


고등학생 시기에도 집안에 이런저런 일이 생겨, 가족구성원이 변하는 일을 겪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보다는 충격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기류를, 충분히 알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으므로.

다행히도, 공부에 집중할 만한 여건은 되었기에 '일단은 그렇게 되었구나' 하고 순응하며, 내 할 일에 집중했다.

그저 공부, 또 공부.

대학에 가야 하니까.


그렇게 잘 버텨내던 나는, 대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