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물가상승 및 무역수지 악화와 함께 국민들의 가슴은 갈수록 타들어간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동안 음식점과 커피숍 등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봉급생활자와 달리 자영업자들은 고정비 부담이 가중되며 가게 문을 닫거나 겨우 버텨왔다. 이에 정부까지 재정지출을 통해 지원을 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다. 경제지표상으로 볼 때 현재의 경제상황은 IMF 금융위기 때보다 별반 나은 게 없는 걸로 나온다. 향후 경제사정이 어떻게 바뀔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하루속히 이러한 깜깜한 터널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기만 하다.
인간은 보다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자기 계발에도 힘쓰지만 살면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衣食住 문제로부터의 해결이다. 얼마 전까지 화창한 날씨 속에서 편안하게 지내왔다면 지금은 대낮에 하늘이 캄캄해지고 폭우가 쏟아지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악천후하에서는 화창한 날에는 안중에도 없던 의식주문제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이럴 때일수록 그동안 당연시되어 온 衣食住문제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해 볼 필요도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일 때 태어난 우리 자녀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쪼들린 생활과 '보리고개'란 말로 대변되는 우리 윗세대의 삶을 이해하기 어렵다. 만일 어려운 일에 대한 耐性이 없다면 힘든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삶 자체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일까지 생길지 모른다.
내가 10대였던 1970년대에 가장 인기 있던 스포츠가 지금은 다들 기피하는 스포츠, 복싱이었다. 당시 링 위의 복서들은 맞아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시합을 했는데 그들을 지탱시켜 준 것은 훈련을 통한 체력이라기보다는 '헝그리 정신'이었다. 그러한 헝그리 정신은 복싱 이외의 다양한 삶의 터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 시절엔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던 사람을 포함 누구라도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 일요일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악착같이 일하였다. 그렇게 일해서 번 돈은 생활비로 또한 매달 꼬박꼬박 적금에 들어가거나 자녀들의 교육비에 사용되었다.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 시절에는 개천에서 나온 용들이 꽤 많았으며 그중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있다. 내가 존경하는 지식인 한 분은 시골에서 공부를 잘해서 S대에 진학해 가정교사를 하며 공부를 했는데 그런 식으로 가난을 극복해 성공을 거둔 엘리트들은 법조계, 의료계, 제계, 학계를 통틀어 한둘이 아니다.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는 과거 어렵던 시절 쪼들린 생활 속에서도 위축되거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 성공을 거둔 이들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이라면 앞으로 더욱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할 주역은 바로 지금과 같은 역경과 고난의 틀속에서 나오게 되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