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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May 08. 2023

나 자신과의 약속

내가 나를 공감해 줄게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며 위로를 하고 그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주어야 할 것만 같았던 적이 있었다.

자신이 공감력이 뛰어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무언가 솔루션을 제공해주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었다. 

하지만 내가 제공해 주는 솔루션들이 늘 좋은 결과만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었고  난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더랬다. 그저 내가 제공한 해결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탓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오늘 새벽 ‘공감’에 관련된 책 정혜신 박사님의 <당신이 옳다>를 읽고 책모임이 진행되었고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공감’과 적정심리학에서의 ‘공감’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만났던 건 21년 1월 한참 책과 친해지기 시작했던 그때였다.

그저 순순하게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말없이 들어주었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책을 읽으며 반성하는 자세로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려 보며 읽었더랬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않도록 하자며, 혼자 책을 읽고 과거의 나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했던 책이었다.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하고 책을 통해 단단해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이 책을 만나고 그저 공감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하고는 잊고 지냈었다.




그렇게 시간은 2년이 훌쩍 넘은 23년 5월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2년 전 그때의 내가 아니었다.

아들을 먼저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고 아직도 그 아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요즘이다.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책과의 시간들을 통해 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시기에 너무나도 큰 아픔을 겪고 괜찮다며, 괜찮아지고 있다며 내 자신에게 다짐하고 지내는 나에게 <당신이 옳다>는 처음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읽혔다.


책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공감’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필요했을 아들이 떠올랐다.

“그랬구나.. 네가 그렇게 힘들었겠구나..”라며 손 한번 꼭 잡아주지 못했던 나.

“너는 언제나 옳아.. 그러니 용기 내서 엄마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니?” 라며 기다려주지 못했던 나.

있는 그대로의 아들의 모습이 아닌 내가 바라고 원하는 아들이길 바랐고, 그 바람에 부흥하고자 억지웃음을 웃고 있었던 아들의 감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던 나.

한 권을 읽어내기가 무척 버거웠다.

이제는 곁에 없는 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꾸만 아들이 떠올라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왜 그렇게 해주지 못했던 것일까. 자책하는 마음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먹먹한 마음으로 책을 읽으며 책에서 해답을 찾고 싶었다. 목이 메어왔다. 내가 나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게 답답했다. 특히 아들에게 갖고 있던 미안한 마음과 자책감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옥죄어왔다. 그러던 중 글을 발견했다. 바로 내가 내 자신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아직도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기 세계 안에 갇혀 있던 엄마에게 타인에 대한 공감이란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다. P200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만날 수 없다. 자기 모습만을 무한 투사하며 불안해하게 된다. 이미 아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 된다. 내 상처 속에 매몰돼서다. P275


 함께 치유해야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무어라도 된 양 아들의 일을 해결해 주려고 덤볐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절대로 그리 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 자신이 치유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타인을 치유할 수 있게 도와준단 말인가.

가장에 무게에, 직장 생활에 치이며 누구에게도 제대로 공감받지 못하며 생활 속에 지쳐있던 나였다. 건강하지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던 나 자신이 공감'허기'로 가득한데 누군가의 '허기'를 채워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었을까. 이것을 깨닫게 되자 눈물짓던 나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이 생겼다.

‘그랬구나..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내 자신과의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독서모임 회원들과 나의 이야기를 나누며 위안받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괜찮지 않다면 억지로 괜찮다고 하지 않기로 말이다. 난 아직 치유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절대로 빠른 시간 안에 치유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되새겼다.


오늘 아침 책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찾았으니 앞으로 내가 자신과의 공감의 시간을 갖고, 회피하지 않으며 정면으로 받아들여 치유와 내면의 성숙을 가져가도록 노력해보려 한다.

내가 내 자신과 하는 최소한의 약속의 시간이었다.


내가 공감받아야 비로소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너를 제대로 공감할 수 있다.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
나에 대한 혼란은 반가운 손님이다. 꽃 본 듯 반겨야 한다. 그 혼란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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