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 24

백화등

by 박종규


정원이 있는 집은 계단식 밭으로 형성된 산 중턱에 위치한 3-40가구의 마을 중 폐가를 사서 목조주택으로 지었다.


그래서 집은 자연스럽게 언덕 위의 집이 되었다.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의 형태를 아주 밀집형으로 축소한 마을로 상상하면 될 것이다.


물론 바다도 보이지 않고 희고 푸른색으로 일반적인 채색으로 통일되지 않았지만, 전체적 경관은 새로 지은 주택들과 고주택이 그런대로 이질적이지 않고 서로 조합을 이루고 있다.


계단식으로 보면 두 번째에 속하는 층에 속한 집은 문 입구에 오른쪽에 비교적 높은 바위 담을 가지고 있는데 몇 년 전 그 아래에 옆집에 사는 형이 어딘가에서 가져온 백화등 묘목을 심었다.


언젠가부터 입구의 라일락이 질 때면 언덕 바위를 가득 덮은 백화등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그 향기의 감미로움은 샤넬이나 그 밖의 어떤 명품 향수의 향기도 흉내 내지 못한다.


딸이 캐나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에르메스의 ‘나일의 정원’이란 향수를 나에게 주었는데 그 향기도 내가 맡은 향수 중에서도 아주 특이하고 오묘했다. 그러나 사실 어떤 자연도 인공을 초월한다.


장 보들리야르가 말했듯이 비록 현대가 시뮬라크르 즉 실재라는 원본을 대체한 가상적 이미지의 시대라 하지만 자연은 실재한다. 그리고 생성과 소멸도 꿈이 아니라 실재한다.


향기는 지속적이지만 한시적이다. 모든 개체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꽃은 지고 향기도 사라지고 삶도 죽음으로 향한다. 하지만 카프카가 표현한 것처럼 모든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닌가?


미각이나 후각은 가끔 우리를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인도한다. 프루스트는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물면서 그 맛과 향기와 분위기를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병상 가운데서도 14년 동안 4000쪽의 분량의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하다. 백화등의 향기는 나에게 읽어버린 낙원의 정경으로 인도한다.


대개 그렇듯이 낙원은 유아기적 세계의 추억이다. 시골에서 자라서 처음 접촉한 비교적 원시적 자연이 보존된 그런 공간, 아버지와 내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대립하기 전의 그런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백화등의 향기는 나를 그 낙원으로 안내한다. 좀 더 살아서 그 낙원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안티 오이디푸스와 안티 로고스의 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