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삼위일체의 뇌
“열을 지어 즐겁게 행진하고 있는 군인에게는 척수만 있어도 충분한데, 그는 신의 실수로 인해 큰 두뇌를 받았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970년대에 신경과학자인 폴 맥린(Paul MacLean)은 현대 인간의 뇌 속에 있는 보다 원초적인 진화적 구조물과의 대화를 강조한 이론을 발표하였다.
맥린은 자신의 생각을 삼위일체의 뇌(triune brain)라고 불렀다. 다윈과 프로이트의 이론과 매우 유사한 이 이론은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서 볼 수 있는 일부 모순점 및 비연속성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에서의 설명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23쪽)
삼위일체의 뇌란 신경과학자 폴 맥린이 1960년대에 제안한 이론으로, 인간의 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달한 세 개의 구별되고 진화적으로 분리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세 개의 영역 즉 인간 두뇌의 진화적 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파충류의 뇌: 이것은 호흡, 심박수, 체온과 같은 기본적인 생존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가장 원시적인 부분이다. 그것은 뇌간의 바닥에 위치하고 있으며 파충류에서 발견되는 뇌 구조와 유사하다.
둘째, 변연계: 이것은 공포, 즐거움, 공격성과 같은 감정과 동기를 담당하는 뇌의 감정 중심이다. 그것은 뇌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유류에서 발견되는 뇌 구조와 유사하다.
셋째, 신피질: 이것은 더 높은 수준의 사고와 추론을 담당하는 뇌의 가장 발달된 부분이다. 그것은 뇌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간과 일부 영장류들에게 독특하다.
삼위일체 뇌이론은 이 세 영역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차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파충류의 뇌가 가장 오래되고 신피질이 가장 최근에 발달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인간 뇌의 복잡한 구조와 기능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신경과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아왔다.
맥린은 인간의 뇌를 파충류 및 쥐나 말과 같은 하위 포유류와 진화적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 세 부분으로 나뉜 체계로 설명하였다. 각각의 연속된 층이 점점 더 복잡한 기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뇌 속의 뇌, 그리고 또 뇌 속의 뇌를 생각해 보라.
그 중심부는 파충류 뇌(reptilian brain)로서 활성화, 각성, 항상성 및 생식 본능을 책임지고 있으며, 진화과정 동안 비교적 변하지 않은 부분이다.
옛 포유류 뇌(paleomammalian brain)는 학습, 기억 및 감정의 중심이 되며 파충류 뇌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가장 높고 가장 바깥쪽 층에 위치하고 있는 신포유류뇌, (neomammalianbrain) 또는 신피질은 의식적인 사고, 문제 해결 및 자기 인식을 담당한다.
맥린은 우리의 세 가지 뇌가 반드시 의사소통을 하거나 협력을 잘하지는 않는다고 제안하였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오로지 신포유류 뇌만이 의식과 언어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이런 생각은 진화, 신경과학 및 정신치료 사이의 근본적인 연결을 가능하게 해 준다. 샤르코와 프로이트가 해리와 히스테리로 불렀던 현상은 이렇게 다르지만 같이 살고 있는 뇌들 사이에 일어난 부적절한 통합과 조화의 결과이다.
비언어적인 파충류 뇌와 옛 포유류 뇌가 신포유류 뇌의 처리과정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맥린의 설명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마음을 구별한 프로이트의 생각과 비교적 일치한다.
삼위일체 뇌 모델은 진화의 산물, 현대의 신경계 그리고 인간 경험의 조직화에서 나타나는 일부 타고난 어려움 등의 관계를 연결하는 데 있어서 의미 있는 비유를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런 진화의 역사와 현대의 신경계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은 치료자로 하여금 사람, 말 및 악어를 동시에 치료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게 하는 것이다. (24쪽)
맥린의 삼위일체의 뇌 이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과제를 가져다주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뇌의 진화과정에서 세 가지 뇌의 구조와 기능은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진화하였기 때문에 그 내부의 복잡한 연결망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심리학 진영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는데 프로이트가 발견한 의식의 삼중적 구조가 융과 라깡을 거치면서 그 심리적 내용물의 구조를 판독해 내는 일이 고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일이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라깡의 ‘에크리’를 강해하는 강좌 몇 개를 들어보자. 처음에는 ‘보르메오의 매듭’과 같은 도식적 구조에 쉽게 매혹될 것이다. 그러나 상상계가 상징계 그리고 실재계를 넘나드는 응축과 전이 현상에 관해 듣다 보면 우리는 곧 불가해의 장으로 빠져든다.
양자역학자들이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여라.‘ 즉 아원자의 세계를 설명하는 어떤 단순한 원리나 법칙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에 양자역학을 설명하기 위해 확률함수에 간접적으로 의존하나 그것도 아직 완전한 수학적 설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태가 너무 복잡하면 우리의 진화된 뇌는 오히려 단순한 결정에 따른다. 즉 직감, 직관, 예감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가진다. 사실 이런 성향과 태도는 분명히 몸과 뇌의 종합적 진화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뇌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인관계로 형성되는 사회적 뇌
정신치료와 관련이 있는 신경망은 뇌 전반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 일부는 진화적으로 원시적인 부분이며, 또 다른 부분은 최근에 더 발달한 부분들이다. 일부는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반면, 또 다른 부분은 성숙해지는 데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진화와 발달 모두를 이해하는 것이 인간 경험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이유이다.
만약 당신 스스로가 안전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이들에게 그것을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안전감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들은 그것을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윌리엄 메닝거(William Menninger)
개체발생 (ontogeny)이 계통발생(phylogeny)을 반복한다는 이론은 각 개체가 수정되고 발달할 때 종의 진화가 그 과정에서 반복된다는 개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맥린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완전한 사람으로 발달하기 전에 파충류와 옛 포유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비록 이런 반복 이론이 대부분 틀린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진화와 인간 발달의 과정 사이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유사점이 존재한다.
파충류 뇌는 태어날 때 완전한 기능을 하는 상태이고, 옛 포유류 뇌는 기본적인 틀이 만들어져 있어 초기 경험에 의해 조직화될 준비가 되어 있다. 반면에, 대뇌겉질은 30년 동안 서서히 계속적으로 성장하며 평생을 통해 성숙되어 간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감정적 학습이나 대인관계적 학습은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통제하는 초기 수년 동안에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많은 양의 학습이 우리가 외현기억(explicit memory, 어떤 특정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는 개인의 의식이 있는 기억), 문제해결, 또는 집중과 같은 기능을 위해 필요한 대뇌겉질 체계를 형성하기 전에 일어나게 된다.
그 결과,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회감정적 학습 경험의 대부분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반사, 행동 그리고 감정에 의해 형성되고 조절된다. 더욱이, 우리의 어린 시절 경험은 우리의 미성숙한 뇌의 편견과 한계에 의해서 왜곡된다. 정신치료는 대부분 이러한 진화와 발달의 결점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존재한다.
문화, 언어, 날씨, 영양 및 부모는 후생적 과정을 통해 우리의 뇌를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만든다. 좋은 시기와 좋은 부모 밑에서 형성된 초기의 뇌는 아이가 평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나쁜 소식은 전쟁의 시기에 태어나거나, 부모에게 정신병리가 있는 것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가 있을 때 그것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초기의 대인관계 환경은 어린아이의 신경망을 형성하거나 기억, 감정, 안전함 및 생존과 연관되어 있는 뇌의 회로 내에 생화학적 기준점을 형성함으로써 사람의 뇌에 각인될 수 있다. 나중에 이러한 구조와 처리과정은 사회적 기술, 지적 기술, 정동조절 및 자기감(sense of self)을 위한 기본적인 구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27-29쪽)
글이 독자가 보기에 또 길어졌다. 결론을 간략히 요약하면 진화심리학 혹은 진화생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유아기적 심리/생리적 환경과 사회적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격언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수억 년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획득한 행동체계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엉크러진 심리적 장애의 원인을 발견하려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무의식에 감추어진 유소아기적 과거의 기억에 직면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혹은 이웃이나 친구에게 학대를 받았다면 그 심리적 경험은 평생을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장애를 유발한 원인을 찾아내고 가해자를 용서한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학습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한다면 우리는 치유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