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인 뇌 치유하기 1

1: 심리학과 신경학의 역사

by 박종규

마음과 물질이 융화될 수 없다던 과거의 이분법적 요소와 역설이 지금은 사실상 마음, 뇌, 사람을 하나로 보는 시각으로… 바뀌게 되었다.-로저 스페리(Roger Sperry)


뇌는 어떻게 마음을 만들어 낼까? 뇌와 마음은 어디에서 만나며,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일까? 이런 것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이런 질문은 너무 어려워서 마음이나 뇌에 대해 각각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아니면 서로가 무관한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 흔한 반응이다. 이런 접근법의 문제점은 뇌와 마음이 하나의 통합된 과정임을 이해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신경학과 심리학은 공통적인 정신생물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이유나 지적인 싸움에 의해서 서로 동떨어져 있었다. 신경학과 심리학의 서로 얽힌 역사는 이런 서로 반대되는 힘에 의해 밀고 당겨져 왔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19쪽)

모든 것이 상징과 비유로 구성되었던 신화의 세계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사람들은 고대 희랍의 자연철학자, 물활론자들이었다..

그들은 우주의 본질이 살아있는 신성한 물질이라고 보았으며, 특별히 데모크리토스와 에피큐로스와 같은 물질론자들은 인간의 정신마저 물질의 운동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플라톤과 어거스틴 그리고 데카르트와 헤겔에 이르는 주지론적이고, 정신우위의 철학적 전통은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신성과 소통할 수 있는 인간 지성의 불멸성과 절대성에 사색의 중점을 두었다.


근대학문의 문을 연 데카르트 역시 인간의 마음을 ’ 기계 속의 유령‘으로 비유하며 육체의 속성을 연장(extension)으로 그리고 마음의 속성을 사유(thinking)로 구분하며, 사유하는 주체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몸과 마음이 이원적인가? 일원적인가? 몸과 마음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어느 것이 더 주도적인가? 하는 물음은 심리철학적 물음을 넘어서 종교와 예술 및 문화의 다양한 방면에서 인생의 본질 혹은 왜곡된 삶의 치유와 관련되어 왔다.


필자가 이 책을 소개하고 함께 읽기를 원하는 일차적인 독자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소통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겪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많은 시간이 요하는 심리 상담을 접하기 어렵고 그냥 약물 치료에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정신과 의사와 초기 상담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면담은 불과 몇 분이고 그것도 약 처방을 위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보다 냉정하게 우리의 마음과 뇌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치료에 적용한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자신의 마음의 지도와 뇌의 지도를 함께 바라보자. 그리고 어느 부분의 길이 왜곡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뭔가 치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젊은 날의 프로이트에게로 돌아가보자.

프로이트는 마음에 대해 신경학자로서 호기심을 가지고 반란을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프로이트는 의과대학에서 말하는 마음과 뇌에 대한 편파적인 생각에 좌절을 느꼈고,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다른 사람과 같이 연구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29세 때, 프로이트는 1885년의 가을과 겨울을 파리에 있는 살페트리에르(Salpétrière) 병원에서 보낼 수 있는 여행 장학금을 얻었다. 살페트리에르 병원을 선택한 이유는 마음과 뇌에 대한 전문가로 알려졌던 장 마르탱 샤르코(Jean-Martin Charcot) 교수의 평판 때문이었다. 프로이트는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정평이 나 있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마음과 뇌 사이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스승을 찾을 수 있었다.


샤르코는 당시에 히스테리 (hysteria)라고 불리었던 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환자에 대한 전문가였다. 이런 환자들은 발작이나 마비 같은 신경학적 질병과 유사한 증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뚜렷한 신체적 원인은 없는 환자들이었다. 전형적인 예로는 한쪽 또는 양쪽 손목에서 시작되어 손에 감각이 없어지는 장갑무감각증(glove anesthesia)이 있다.


이런 환자들의 경우에 손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즉, 그들은 아마도 큰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유발하는 금기시되는 어떤 행동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현상은 마음속에 있는 갈등이 신체적 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1880년대는 잠재의식이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최면을 통해 증명됨)이 유행해 보편적으로 알려진 시기이기도 했다. 샤르코는 마음과 뇌의 상호작용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최면을 사용했다. 프로이트가 샤르코와 함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보냈던 몇 개월은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정신적 과정이 의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히스테리 증상이 거짓이나 꾸며진 것이 아니라 뇌의 신경학적인 구조 내에 있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힘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히스테리는 외상적 경험이 뇌를 재구조화시키고 의식적인 경험과 싸우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의식과 행동 사이의 해리성 분열은 프로이트에게는 뇌가 다양한 단계의 의식과 무의식적 지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로 여겨졌다. 프로이트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언어, 감정 그리고 치료적 관계를 사용하여 이들을 다시 연결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프로이트는 1886년 2월에 비엔나로 돌아왔고, 두 달 뒤에 개인 클리닉을 열었다. 그는 당시 의학이라는 과학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서도 히스테리가 존재한다는 논문을 그해 말에 발표함으로써 반란을 계속하였다. 무의식의 세계에 심취한 프로이트는 그가 1939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열정적인 탐구를 계속하였다.(20쪽)

프로이트가 인간 의식의 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이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마치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 과정(영혼 과정)은 의식되지 않은 것, 의식되기 이전의 것, 의식된 것 등 세 가지 동적 요소들에 의해서 구성된다.


“정신 과정을 엄청나게 큰 빙하 덩어리에 비교할 경우, 물속에 잠긴 가장 큰 부분은 의식되지 않은 것에, 물 위로 나올 듯 말 듯한 중간 부분은 의식되기 이전의 것에, 그리고 물 위에 나와 있는 극히 작은 부분은 의식된 것에 해당한다.


처음에 프로이트는 지형학적 모델로 무의식의 구조를 설명했다. 우리가 인식하는 정신의 바깥-땅 위의 표면과도 같은-에 의식이 존재하고, 그 밑에는 지금 당장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든 다시 생각을 꺼내올 수 있는 전의식-땅 밑의 지표-이 존재한다. 전의식에서 한층 더 깊이 경계를 넘어 들어가면 의식에서 억압된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이 지형학적 모델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전의식은 넓게는 무의식에 포함되는 개념의 하나이다. 차후에 프로이트는 이러한 지형학적 모델을 만들어 내 역동적 정신 구조론으로 보다 구체화시키는데, 이것이 익히 알려진 자아(ego)-초자아(super ego)-이드(id)의 3 원적 기능이다.“(위키백과 참조)

프로이트는 자신의 논문들을 통해서 샤르코의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히스테리 증상의 발생을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거슬러 추적함으로써 무의식의 세계를 발달적 맥락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히스테리 환자가 억압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한 무의식적인 감정적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더욱이, 프로이트는 개인의 발달과 종의 진화를 연결시켰다. 우리 안에 고대 선조의 생물학적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고전적인 생각에 영향을 받은 프로이트는 그의 발달이론에서 성성(sexuality), 분노(rage), 선망(envy)과 같은 본능적인 욕동들(instinctualdrives)의 중요성을 포함시켰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문명화 밑에는 소위 이 '문명화된'행동이 보여 주는 많은 모순과 갈등이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좀 더 원초적인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험의 원초적 · 무의식적 요소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을 원본능(id)-우리가 우리의 파충류 조상 및 포유류 조상과 공유하고 있는 원초적이고도 문명화되지 않은 생명 에너지-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개념은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의 합리적인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해 가능한 적개심(hostility)과 일치하였다. 그 당시에 의사들은 유럽 문화의 중심으로 동물의 왕국에서 그들이 가지는 우월성을 보여 주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세상의 '원시적인' 인종을 종속시키기 위해 그들이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원시적인 인종은 이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변함없이 주장하고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문명화된 사람과 동물을 연결시키는 시도(어린아이도 성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생각을 포함해서)는 프로이트와 그의 이론들이 고상한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21쪽)

지금은 진화심리학이 심리학의 중요한 파트가 되었으나 프로이트 당시에는 고상한 근대문명적 이성의 배후에 여전히 원시적인 욕구 나아가 동물적인 충동이 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여전히 인간에게 주도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논리는 과연 합리적인 서구인에게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온갖 그럴듯한 이념과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충족의 행위 체계 속에서 움직인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다. 욕망의 충족이 쾌락의 원칙이다. 이 원칙 아래 생존의 욕망, 성의 욕망, 권력의 욕망, 지배의 욕망, 인정의 욕망이 삶의 전체 혹은 대부분을 지배한다.


그 원초적 욕망이 좌절될 때 아니면 적절하게 사회적 소통을 통해 통제받지 않을 때, 히스테리나 신경병리학적 장애 혹은 사회적 적응의 장애가 발생한다. 그러나 한편 욕망의 구조은 심리적이자 동시에 생리적이다.


뇌세포의 유전적 장애와 외부의 신체-감정 충격으로 인한 생화학적 변동은 마치 용수철이 탄성을 잃어버리듯 시냅스 연결의 장애를 발생시킨다. 의식은 외부와 내부를 유연하게 오가며 탄력적으로 대상과 자신을 지향한다.


지향적 탄력성을 읽어버린 의식과 신경은 과도하게 대상 집착적이거나 자기 집착적 성향을 띤다. 이런 성향은 사회적 관계의 장애 요인이 되며 심해지면 소위 소시오패스, 즉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된다.


저자는 당시 프로이트가 발표하지 않은 프로젝트가 있다고 한다. 다음 편은 그 프로젝트를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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