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철학 11: 영웅

신 중화주의의 서막

by 박종규


1. 공산주의에서 중화주의로


모택동이 중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이나 중국의 기틀을 마련했던 한무제와 비교해도 전혀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모택동은 후년의 여러 가지 과오에도 불구하고 외세를 몰아내고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으며, 국경을 확장하고 다민족의 갈등을 봉합하고, 공공 교육을 통해 보통화(普通話)를 언어의 표준으로 정립하였으며 토지 국유화와 재분배를 통해 농민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등 진시황이나 한무제가 할 수 없었던 치적을 이루어내었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였다. 진시황은 힘과 무력에 바탕을 둔 패도정치를 하였기에 그가 죽은 후 중국은 다시 분열하게 되었고 유방과 항우의 대결을 거쳐 한나라가 건국되기에 이르렀다.


법가를 신봉했던 시황과 달리 무제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 들어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동시에 군현제라는 중앙집권제를 시행하면서 이념적으로 중화주의를 표명하게 된다. 한나라 이후 중국은 사실 한무제와 동중서가 만든 토대 위에서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의 설계도는 중요하다.


모택동 사후 중국은 등소평이 실용주의 노선에 의해 시장경제와 대외 개방을 수용하면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게 되었다. 경제 발전으로 인한 빈부 격차, 도시와 농촌의 격차, 남부와 서부의 격차 못지않게 중국 내외에서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민주화의 문제였다.


과연 지금의 공산당으로 선진 중국이 가능하겠느냐 하는 물음이 개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중국 정부를 괴롭히는 화두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엄청난 지원으로 만들어진 장예모의 영화 ‘영웅'은 공산주의에서 중화주의로 통치 이념을 변모시키면서 생존을 모색하는 중국 공산당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2. 진시황과 자객 무명 그리고 파검


진시황은 무력으로 춘추 전국 7웅 중 초(楚), 연(燕), 제(齊), 한(韓), 위(魏), 조(趙) 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진(秦 China)이란 단일국으로 통일한다. 자객 무명 역시 진시황을 살해하려 했던 자객들을 하나씩 제압함으로써 (사실은 그들의 희생으로) 진시황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사상적으로 보면 시황은 법가 사상의 실현을 통해 제자백가 사상을 통일하게 되며 결국엔 극단적인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오히려 모든 사상의 공백을 초래하게 된다.


다양성을 통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배제함으로써 획일적 전체주의에 빠지게 된 것이다. 마치 모택동이 문화 대혁명을 일으켜 사상의 암흑기를 가져온 것처럼 이는 진의 몰락을 자초하게 된다.


자객 무명은 다양한 무술의 달인들을 제압하는 과정을 진시황에게 구술한다. 그러면서 무명은 이 달인들의 무술을 자신의 경험 속으로 통합한다. 장천과 파검은 중국 사상의 대표적 두 흐름인 도가와 유가를 대변한다.


무위 사상을 본질로 하는 도가 즉 장천과의 대결은 실제 결투 이전에 각자의 상상 속에서 가상의 대결을 펼치는 것으로 나온다. 도가의 무위지위(無爲之爲)의 경지를 실제 화면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기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엔 동일한 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중국적인 사고가 검의 사용과 악기의 연주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파검과 비설과 무명은 다 조나라 사람이다. 이 영화는 사기열전에 나오는 조나라 출신 자객 형가(荊)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조나라를 진나라에 비해 학문을 숭상하고 예를 중요시 여기는 유가적 이상향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조나라가 진나라 보다 문화적으로 선진화된 나라인지는 역사적으로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의 중심은 시황과 무명이 아니라 오히려 파검이다. 파검은 비설과 함께 이미 시황에 접근하여 암살할 기회가 있었으나 포기하고 조나라에서 후학들에게 서예를 전수하며 무명의 등장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는 무명으로 하여금 진시황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파검은 진정한 중화주의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3. 역사는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역사의 기초는 아마도 최소한의 객관적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의 것이었고 또 한편 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구성된 과거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객관적으로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적 정신에 의해 구성된다. 예술 작품의 경우에는 시대정신 이전에 개인의 주관이 더욱더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황 영정과 자객 무명의 대화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다분히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나생문 羅生門)'을 연상케 하는 영화적 재구성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감독이 객관적 사실보다는 사실의 주관적 구성 나아가 시대적 구성에 관심이 더 많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라쇼몽'이 실체적 진실을 모호함 속으로 은폐시키고 오직 감상자의 판단에 맡긴 반면 '영웅'은 신 중화주의의 개막이라는 단일한 결론으로 나아간다.


결과적으로 신 중화주의 홍보 영화를 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장예모 감독은 미술 전공자 혹은 중국 전통문화 애호가답게 여러 가지 다양한 예술 영화적 기법들을 이 영화에 도입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그의 영화의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색의 도입이 바로 그러하다. 붉은색에서 청색으로 그리고 녹색에서 흰색으로 전환되는 장면들은 단색을 선호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보여주고 자하는 감독의 예술적 취향이 잘 드러난 기법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다음에 인용한 무명과 시황의 마지막 대화는 예술영화의 장점을 고르게 갖춘 이 영화가 정치 영화로서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는 표층적인 언어이면서 동시에 중국 정치철학의 심원한 깊이를 드러낸다.


“전하, 파검이 말하길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린 전쟁을 오직 진나라만이 종식시킬 수 있고 천하를 통일할 것입니다. 천하통일이란 대의를 위해 암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고통은 온 천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조와 진의 원한도 천하라는 대의 아래서는 사소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시황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이 영화가 동양적인 정신, 중국적인 정신의 이상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수작이라는 점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야 알겠도다! 이 글씨엔 검술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검법의 최고 경지를 쓴 것이다. 검술의 제1의 경지는 인간과 검이 하나가 되는 것으로 검이 사람이요, 사람이 곧 검이니 수중의 풀조차 무기가 될 수 있다. 검술의 제2의 경지는 손대신 마음으로 검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보밖의 적도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검술의 최고경지는 손으로도 마음으로도 검을 잡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큰마음이다. 최고의 경지는 살생이 없는 평화를 뜻하는 것이다."


과연 장기집권에 성공한 시진핑의 중화민족주의 선언은 이런 사상의 기초 위에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마오쩌둥의 영구혁명 사상을 펼치려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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