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르네상스와 대학교에서의 경제학 2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그누스의 제자였으며, 그의 저작 상당 부분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분명하고 평이하게 설명하려고 했다. 마그누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교부들의 사상을 종합했다. 이는 재산에 관한 그의 교의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스콜라주의자들의 주요한 주장-그 상당 부분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근본으로 한-이 담겨 있다. 그 주장이란 이런 것이다.
즉 사람들이 자유를 행사하려면 사유재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재산보다는 자기 자신의 재산을 돌보는 데 더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점, 사유재산은 질서를 낳을 것이라는 점 등이다. 교부들의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종합하는 데 토마스 아퀴나스의 솜씨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것은 평화에 의한 논증에서다.
이 논증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지만, 아퀴나스가 그것을 기독교화했다. 즉 아퀴나스는 오직 원죄(原罪) 이후의 인간의 부패상태 때문에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유재산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논증했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재산이 사유화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그 재산의 과실은 공동의 것이고, 한 사람의 잉여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되거나 구매와 판매를 통해 공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의 한 가지 요구는 이런 것이다. 재화가 교환을 위해 사용될 경우에 구매와 판매는 정당한 가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교환적 정의(commutative justice) 또는 교환에서의 정의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스콜라주의자들은 "무언가가 사기행위 없이 판매될 수 있는 한 그것은 가치 있다"는 로마법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그들은 받을 수 있는 최고가로 재화를 판매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주저했다. 재화와 그 품질의 자의적 허위 표시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마법에 연원 하는 이 주장은 당사자들이 재화가 교환되는 조건에 동의했다는 것을 전제했다. 이는 판매자가 재화에 관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제시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판매자가 얼마간의 정보를 숨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만약 명백한 결함이 있다면 정당한 가격을 매기는 것으로 충분했고, 판매자는 그 결함을 모든 사람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흥정이 일어난다는 것, 구매자와 판매자는 언제나 서로를 속이려 한다는 점은 인정되었다. 예를 들어 곡물이 가득 든 선박을 소유한 사람은 곧 도착하게 될 다른 배들에 관해 구매자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정당한 가격이란 현재 적절한 가격이지 장래에 성립할 가격인 것은 아니었다.(74-76 쪽)
아퀴나스는 원죄로 타락한 인간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사유재산제를 인정했으나 다만 그것은 구내와 판매를 위하여 생산된 재화의 잉여가 공정하게 분재되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그러하다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의 발생 초기의 교회 공동체에는 소위 일종의 공산 경제 혹은 공유 경제가 권장되었다. 교회 안의 경제원리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 2:45 , 즉 마르크스가 미래 공산주의에서 실현할 이상인 ‘능력대로 벌고 필요대로 가져가는’ 공유 경제였다.
그러나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AD346년, 재위에 오른 지 9년 차에 기독교 면세혜택 범위를 주교, 사제, 부제에서 교회의 고용인, 교회 소유의 농지, 공장,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대폭 확대해 주었다. 이 시대 주된 세금은 인두세와 토지세였는데 이 중 인두세를 면제해 준 것이다.
사실 신석기혁명 이후 고대 문명의 발생기에서부터 경제적 불평등은 극심해왔는데, 토마 피게티에 의하면 삼원주의(사제-귀족-제3의 신분) 사회 이데올로기가 지배적 정치 이념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1장 참조)
기독교화된 로마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구교던 신교 통치이던, 종교개혁과 시민혁명, 산업혁명 이후 19세기까지에도 경제적 불평등은 극심해갔다. 게다가 14세기 이후 활성화된 상업경제는 교환을 위한 화폐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니콜 오렘의 화폐이론
14세기는 경제적 · 정치적·사회적 격변의 시기였다. 군역과 토지에 대한 권리 사이의 연계 같은 봉건적 제도들이 쇠퇴하고 상업이 확대되고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신용과 금융이 발전하고 있었다. 14세기 중반에 흑사병으로 왕들은 노동력에 의한 소득 부족에 시달렸고 소득을 늘리기 위해 점점 더 화폐 악주(주화의 금은 함유량을 감소시키는 것) 같은 수단들에 의존했다. 그러므로 화폐와 경제 안에서 그것이 갖는 역할에 관한 질문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전통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는 니콜 오렘 (Nicole Oresme)의 ‘화폐의 기원. 본성, 법률, 변경에 관한 논고(Treatise on the Origin, Nature, Law andAlterations of Money)’에 잘 드러나 있다. 이것은 14세기 중반에 한 프랑스인에 의해 써졌다. 악한 통화는 통화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다는 이유로 비난되고 있다. 오렘에게 그것은 고리대보다 더 나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다시 고리대는 교환을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이었다. 왜냐면 통화가 마치 온전한 함량을 갖고 있는 것처럼 유통되기 때문이었다.
오렘이 주의를 기울인 또 다른 문제는 통화에서 금과 은의 비율이다. 그는 이러한 비율은 두 금속의 자연적 희소성을 반영해야 하며, 금이 더 희소하기 때문에 금이 은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함축된 생각은 희소한 상품은 풍부한 상품들보다 가치가 더 높다는 것이다. 금속들의 상대적 희소성이 변화하면 그에 따라 주화 안에서 금과 은의 비율도 변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극히 드문 일이고 통화를 변경하려는 통치자들의 시도는 대개 자의적인 것으로서 오직 소득을 올리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오렘은 믿었다. 그는 희소한 금속의 가치를 올리려는 시도를 자신의 생산물에 독점적인 가격을 부과하려는 것에 비유하며 비난했다.
그러나 오렘의 주요 주장은 "화폐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고 통치자가 정하는 가격으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재산을 소유할 수 있지만 공동체가 그 재산의 과실을 나눌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치자는 화폐를 주조하고 그것의 가격을 정할 권리를 갖고 있지만 이 권리를 공동체의 이해에 맞게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치자가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 화폐의 가치를 변경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가 공동체를 대신하여 그렇게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오렘은 시장의 힘을 희미하게나마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가치절하된 화폐가 국내에서 경제적 곤란을 야기하면서 해외로 수출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통치자가 통화에 대한 공중(公衆)의 신뢰를 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화폐가 이제 더 이상 그것에 함유된 은의 가치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도 인식했다. 달리말해, 화폐는 중량을 재고 시금하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인장이 찍힌 한 조각의 귀금속 이상의 그 무엇이 되었다.
그러나 오렘이 통치자에 의한 화폐 가치 변경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을 폈을 때, 그의 반대는 공동체의 이해가 통치자의 이해보다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정치적인 차원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래서 통치자가 하는 일을 제한하는 것은 경제적 강제가 아니라 도덕적 또는 정치적인 제한이었다. 이와 같이 오렘은 문제를 해석하는 맥락에서는 훨씬 더 현대적이지만, 그 근저의 주장은 철저하게 아리스토텔레스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78-82 쪽)
통화의 역사를 보면 돌로 만든 것에서 조개라는 천연자원에서 쇠-동-은-금과 같은 희귀 자원으로 만든 주화에서 국가가 보증한 지폐 그리고 신용카드와 휴대폰 나아가 가상화폐로, 즉 물질적/희소적 가치에서 신용적/기호적 가치로 변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렐은 화폐경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전개한 최초의 중세학자였다. 오렐은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에 이중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미리 간파하였다. 예를 들어 금화 한 개는 금의 순도가 우선 그것의 가치를 결정하나 유통구조나 시장규모에 따라 금화 하나의 교환가치가 결정된다는 것도 알았다.
오펠의 이론은 통화경제 소위 재화의 가치와 통화의 가치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함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금융자본을 견제할 도덕적이고 정치적 제한 즉 IMF나 WorldBank와 같은 규제 기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앞질러 예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시장을 주도하는 것이 투자와 생산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금융자본의 통화가치 변동에 따른 국제 금융 질서의 교란이 인간의 도덕적이고 정치적 통제의 마지노선을 넘었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피게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말하듯이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부의 불평등을 증대시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으며, 특히 금융 부문에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극대화되어 부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문제는 현대의 경제학자들이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