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역사 10: 근대

중상주의

by 박종규

유럽 국민국가의 출현은 종종 '중상주의' (mercantilism)와 관련된다. 이 용어는 중세 말부터 계몽주의 시대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경제사상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중상주의라는 용어는 (동의어인 '중상주의 체계'와 함께) 18세기 후반까지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 용어는 1763년 미라보 후작 빅토르 리케티가 만들어냈지만, 대중화시킨 사람은 애덤 스미스였다.


그는 1776년 『국부론』(Wealth of nations)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일련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그러한 정책에 중상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이 용어는 다른 경제학자와 역사가들에 의해 수용되어 전혀 다른 것들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일부 역사가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일련의 폭넓은 사상과 정책을 기술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중상주의 정책은 산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국가권력의 사용, 수입에 대한 수출 초과 획득 또는 증대, 귀금속의 축적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또한 언제든지 화폐로 전환될 수 있는 귀금속의 축적이 국부를 위해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그 귀금속들은 경제적 편익을 낳을 수도 있었고(통화량 증대는 생산과 고용을 촉진할 수 있다) 군대를 위한 비용 충당에도 필요했다.(94-95 쪽)

유럽에서 민족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통화경제를 위한 금과 은과 같은 자원의 국가주도적 축적은 소위 초기 식민지 개척과 같은 통화적 자원을 위한 국가 정책으로 연결되었다.


스페인은 가장 주도적으로 금을 확보하기 위한 해상 탐사선단을 파견했는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비글호와 같은 연구 탐사가 아니라 서구 제국의 아시아 대륙, 특히 인도의 귀금속 약탈을 위한 의도로 계획되었다.


이런 의도의 배경엔 유럽 민족국가의 경제정책 즉 중상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중상주의는 현대의 자유시장을 위한 무역이 아니라 서구 열강의 통화 자원의 확보라는 제국주의적 침략을 의미했다.

사실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옹호했던 아담 스미스가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이런 제국주의적 중상주의를 비판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힘의 논리 즉 군사력에 의해 시작되었다.


물론 현대 세계경제 역시 국제 시장의 배후에 수요와 공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과 군사력과 금융자본이라는 보이는 손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경제학의 근원이 윤리학과 정치학이듯이 현대의 경제학도 본질상 정치경제학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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