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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Dec 03. 2024

에지쁘뜨

왜 수학인가. 초등 수학 정복 시리즈 1

존경하는 부류가 있다. 거의 막무가내에 가까운 존경이다. 경외심이 더 맞겠다. 어느 낱말을 사용해도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은 같다. 그 흔한 질투도 안 생긴다. 바로 수학 잘하는 놈(?)들이다.

 

나름 공부 좀 한다는 자부심에 살았다. 월말고사 기말고사는 기다려지는 행사였다. 시험 끝나자마자 내 주변에 몰려든 친구들은 나의 입을 바라보았다. 내 말 한마디에 웃고 울었다. (지나간 기억이라 약간의 착오와 과장은 있다) 하지만 나도 나대로의 고민과 희비가 있었다. 바로 수학 때문이다. 내 수학 시험 결과에 따라 반 석차가 달라졌다. 수학을 망친 달은 내가 3등이었다. 표〇전과를 달달 외운 달은 2등으로 올라갔다. 가끔 1등도 했다. 그런 때는 경식이가 실수했거나 좋아하는 만화에 빠져 잠시 한눈을 팔았을 때다. (경식이 만화책 많이많이 줄 걸) 난 주로 2, 3등을 했다. 경식이는 1등을 많이 했다. 경식이는 넘사벽이었다. 수학을 잘했다. 신기한 놈이었다. 저 답이 어떻게 나왔을까? 저런 문제를 풀어낸다고? 그때부터 경외심과 두려움이 싹텄을 것이다. 지금도 수학 잘하는 사람을 보면 같은 감정을 느낀다. 나에게 수학은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경식이는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었다. 초․중학교 9년을 그렇게 보내고 난 수학과 헤어졌다. 경식이는 KAIST를 나와 공대 교수가 되었고 난 교대를 나와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지금은 교장이다!

     

수학의 계단에서 한 번 미끄러지면 회복이 어렵다. 수학은 암기학습이다. 외워야 할 공식이 많다. 내가 처음부터 수학을 못 한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언제나 all 100이었다. 4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어려워졌다. 내적 요인과 외적 이유가 있다. 당시 고전 읽기라는 대회가 있었다. 군 전체 학교에서 대표 한 명씩 뽑아 독후감 쓰기 대회를 하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내가 뽑혔다. (반장이어서 대표가 되었을 것이다!) 선생님과 버스를 타고 신작로 길을 달려 군청 소재지 학교로 갔다. 원고지 몇 장인가를 주더니 칠판에 책 제목을 썼다. 5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기억한다. 이솝 우화 속 여우의 행동에 대한 것을 쓰라고 했다. 잠시 망설이다 줄거리를 줄줄 쓰고 나왔다. 밖에 기다리던 선생님이 어떻게 썼냐고 물어보셨다. 내 말을 듣는 선생님 얼굴이 갈수록 굳어지는 것을 보면서 계속 말씀드렸다. 난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공부도 1등이고 반장인데(당시 반장의 권위는 엄청났다)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도서실에 살다시피 하면서 책을 읽었다. 편중된 학습이 시작되었다. 수학? 까짓거 외우면 되지 하는 자만심도 있었다. 계속 그래왔기 때문이다. 3학년이 지나고 4학년이 되면서 수학(그때는 산수였다)은 외워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같은 패턴을 유지했다. 수학을 소홀히 할수록 수학 시간이 재미 없어지고 그럴수록 점수는 나오지 않는 순환에 빠졌다. 반면에 국어와 사회는 매번 만점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국어, 사회 틀린 문제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한 번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다.

스핑크스, 나일강 어쩌고 저쩌고의 나라는? ① 로마 ②에지쁘뜨 ③중국 ④노르웨이

답이 없다고 했더니 틀렸단다. 선생님께 따졌다. 세계지도를 펴 놓고 이놈아 여기, 여기 에지쁘뜨 있잖냐. 대나무 뿌리 회초리로 맞으면서 선생님 말씀 맞다고 했다. '그래도 이집트인데요'라고 중얼거리며 교무실을 나왔다. 그 선생님은 일본식 발음을 했다.

     

외적 요인은 누군가 나의 학습을 수정해 주지 못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그 누구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수학 싫어하는 아이 정도로 인식했다. 공부는 한 과목만 잘할 수 없다. 당연히 어느 과목을 유별나게 못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나의 수학 학력은 다른 과목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졌다. 국어 학습의 중요성을 말할 때는 쓰기 잘하는 아이가 공부 잘한다고 말한다. 수학 시간에는 수학을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둘 다 맞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국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한다. 즉, 국어를 잘하면 수학을 잘할 수밖에 없다. 수학을 잘하면 다른 과목도 잘한다. 이 과목들이 도구교과이기 때문이다.


‘수학 공부를 중시하는 것은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수학 공부를 통해 좋은 학습 태도를 기를 수 있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다른 과목도 잘하는 이유는(그들의 머리보다는) 그들이 수학 공부를 통해 얻은 학습 태도일 가능성이 높다.’ 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경향신문 2024. 5. 28 화

     

평생 수학에 대한 경외심으로 살고 있다. 이제는 대면할 때가 되었다. 초등 수학 정복기를 시리즈로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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