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철학에 관한 글을 적고 있지만 처음에그것은 나에게 그리 관심 있던 분야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나 공자 같은 인물의 이름만 겨우 알정도였고전공 때문에 필수적으로 들어야만 하는 과목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철학 원서는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주석이나 해설서는 안 그래도 난해한 내용을 압축해놓아서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철학과 관련된 강의가 있긴 하지만 듣기에는양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판서가 잘된노트를 구할 수 있어서 학점을 잘 받기는 했다.
그렇게 공부한 철학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갈 때쯤, '이주향의 인문학 특강'이라는 프로를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게 되었는데, 성우가 철학 원문을 읽어주면 패널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들을 질문을 하였고 사회자가 대화를 이끌어가면서 해설자와 답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철학 외에도 미술과 음악 같은 것을 다루는 코너도 있어 여러모로 유익한 방송이었다. 나는 그렇게 인문학을 귀로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그것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방송에서 언급된 책을 읽어가면서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이해하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데로 그대로 두었다. 인상적인 구절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한 권을 끝까지 꾸준히 읽었고, 그러다 보니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 저 책 교차하면서 글을 읽다 보니 정보들이 서로 연결되었고, 관점의 폭이 서서히 넓어지기 시작했다.책을 다시 읽었을 때는 난해했던 내용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고 이전보다 입체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에 뚫렸을 때 미국과 이스라엘 외에 거의 모든 나라들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교민들이 쫓기듯이 돌아왔다. 그때 전 세계는 아노미 상태였고, 공항은 거의 공황상태였다. 심사대에 보호칸막이도 없었고 심지어 마스크도 제 때 공급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젠가 나도 코로나에 걸려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내가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어 내부망에 글을 하나씩 적게 되었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재해석한 글을 올리면서 직원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 후 나는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었고, 그 브런치에 글을 써서 한번 만에 합격했다.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관해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문턱이 높아 보여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분량이 얇으면서도 깊은 내용을 다를 수 있는 책을 기획하게 되었고 그러한 고민에서 쓴 글들을 브런치에 연재하였다. 브런치의 가장 큰 매력은 관련키워드를 치면 수준 있는 글들을 찾아보기 쉽다는 것이다. 내가 쓴 글들은 에세이 형식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자료의 성격이 강하다. 독자들이 얼마든지 그것을 가져가서 마음껏 활용하여, 인문학을 이해하는 데 조그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험 삼아 2권의 브런치 북을 만들었고 글이 더 쌓이면 편집해서 종이책으로도 발간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글 한 편만 보면 길이 때문에 부담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철학 원서는 그 책 보다 적어도 몇 배는 두껍다. 그리고 글 한 펀에는 적어도 30권 이상의 사유들이 녹아들어 있다. 독자들은 한 편의 글에서 다양한 시점과 그에 대한 논리 전개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네이버에서 블로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일기를 올리는 이벤트를 보게 되었고, 가벼운 에세이를 적어보고 싶어, '지하철에서 책 읽는 남자'라는 콘셉트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읽었던 책이나 사유들을 토대로 글을 적게 되었고, 최대한 날것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즉흥적으로 적고 있다. 그렇게 글을 쓰던 중 브런치에서 `사유의 바다'라는 공동출판 플랫폼을 봤던 것이 기억났고. 소재를 다양화하고 싶다는 생각에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플랫폼은 10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6명을 한 팀으로 묶어 하루에 한 편씩 에세이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로 목표를 달성하면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서 편집하여 후원자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냥 재미 삼아 시도해보는 것이지만 정말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받으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항상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서 0순위는 죽기 전에 내 삶을 기록하는 책을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만 하고 있던 일들이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비록 목표하던 지점에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내 의사와 크게 상관없이 멀리까지 흘러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이 경이로 다가온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이러한 우연들을 발판삼아 필연으로 도약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