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생활기록부를 항상 따라다닌 것이 있는데,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정신 산만하다는 평가였다. 요즘은 주의집중력 장애라는 전문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고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전적으로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했다. 물론 그때의 생각과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굳이 변명을 든다면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에 시달렸고. 그 어린 꼬맹이는 가려움을 견디지 못해 팔과 다리에 접히는 부분에항상 피딱지가 엉겨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당사자가 아니니 그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그런데 그 정도가 그들의 한계였다. 나의 부모님들은 어찌할 방도가 없어 종교에 의탁했다. 공양미 300석을 갖다 바쳐도 심봉사의 눈이 안 떠지는 것처럼 효험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저 마음의 위로 정도는 되었을지는 모른다.
중학교 때 담임은 인문계 갈 성적이 안되니, 공고나 가라는 말을 했다. 공고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우리 때. 기계나 전자공고 외의 실업계에 진학한다는 것은 공부로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으니 기술이나 배워 밥벌이라도 해라는 의미였다. 담임의 평가가 틀리진 않았겠지만 싫다고 오기로 버티니, 어머니를 학교로 불러서 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인문계 고교로 진학하기는 했으나 그곳은 그리 학습 분위기가 좋은 학교가 아니었다.
나는 사춘기 때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그 당시에는 Rock 음악에 심취했었다. Rock의 저항정신이 여러모로 불편한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서태지는 '교실이데아'란 노래로 내가 속해 있는 세계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고. 신해철의 음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게 제기되는 가혹한 평가들을 뒤엎을 수 있는, 무언가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고, 그때는 공부요령도 모르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비록 수능은 망쳤지만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기 추천이라는 제도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를 발견했다. 담임선생님은 행여나 하는 생각에 문학 선생님과 연결시켜주셨고 덕분에 나는 특차로 합격할 수 있었다. 합격 후 담임 선생님은 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고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가게 된 대학에서는 꿈과 열정이 충만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법이라는 학문을 공부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고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다름이라는 가치는 우리들 사이에서는 전혀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그것에 대해 함께 토론했고. 고시원이나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면 공부방법과 학습자료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걸어 도전했고 그리고 실패했다. 잠시나마 꿈을 꾸었고, 슬프기도 했고 동시에 행복하기도 했다.
그때의 우리는 젊었다. 비록 품었던 계획에까지는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랄 맞던 군생활과 수험생활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기나긴 수험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아웃사이더는 어느 곳에서도 존중받지 못했다. 그러한 와중에서 시간을 쪼개 읽는 독서는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것이었고 나름의 생존본능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통해 세상의 범위를 확장했고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내 스타일을 점차적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 본부에서 지식인으로 선정되어 상품권을 받아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재작년쯤 처음으로 지식인에 선정되었고 올해 또 받게 되었는데, 업무 외의 내용으로 상을 받는 사람은 아마도 내가 최초일 것이다. 처음에는 퇴고를 겸해서 내부망에다가 개인적인 관심사인 철학과 예술에 관한 글들을 올렸던 것에 불과했는데, 지식인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속에서 느꺼운 기분이 들었다.비록 금액은 얼마 안 되지만 나의 특성을 인정해주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너무 감사했다.
나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유리한 위치가 주어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의사와 상관없이 강요받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부딪쳐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반작용 속에서 역설적으로 내공이 쌓였고 나름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겪었던 것이 너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도 글을 쓸 소재가 너무도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서 나는 내 모습을 가만히 비추어본다.
나는 친구도 없어. 일도 없고, 수입도 없지. 앞날에 대한 가능성도 없거니와 살아가기 위한 목적도 없어. 그게 나를 위한 일일까?
하지만 그 일들은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일어나야 하는 일이지 않았나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면, 빨리 일어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 태엽 감는 새 연대기, 무라카미 하루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