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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부스 Jun 25. 2023

8. 문 그리고 자물쇠가 알려주는 메세지

이제는 광주에 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들렸다가 가게 되는 필수 코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아버린 산수동 호남맨션 아파트와 그 주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곳이 변해가는 준비단계를 마치고 있다는 느낌이 받는다.



수도 없이 들락날락했던 현관문. 그리고 집에 도착했다는 시작을 알려주는 문은 자물쇠로 잠겨버렸고,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우편함의 편지. 
이제는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우리가 평상시에 어딘가를 나가거나 들어올 때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며 항상 제일 먼저 마주하는 문. 그래서 흔히 시험을 합격할 때 문에 비유를 많이 한다. "문 닫고 들어갔어" "내가 문 열고 들어갔어"라고. 하지만, 그 문이 이제 자물쇠로 잠겨 움직이지도 않고 열 수도 없는 문이 되어버리면 그 안의 장소들은 나와 분리되었다는 신호이자 열쇠 없이는 들어가지 못하는 장소가 되어버린다. (사실, 여름철만 다가오면 벌레들과 나방들이 가득해 투정을 많이 부렸던 문이기도 하다.)



이제 이 문은 굵은 쇠 자물쇠로 잠기면서, 10년 넘게 들락날락했던 이곳은 못 들어가는 곳이자 현실과 단절되었다는 메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비록, 나는 10년 조금 넘는 시간을 보냈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곳에서 저 문을 30년 넘게 들락날락했을 수도 있다.


자물쇠로 잠겨진 문 앞으로 이동해서 투명 유리 문 건너편의 모습을 바라봤다.


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풍경은 잠겨진 문 뒤로 보인 우편함이었다. 내가 살았던 000호에 담긴 우편과 주위의 우편함에 붙여진 각종 식당 전단지들. 



손을 뻗어 꺼내어 어떤 내용의 우편인지 읽고 싶지만 더 이상 열리지 않는 문과 닿을 수 없는 우편함.


인생을 살면서 이리저리 이사를 다닌다. 누구에게나 정들었던 집이 있고 싫었던 기억의 집도 있을 수도 있다. 사실, 나 또한 재개발 이야기가 계속 나오면서 우리동네가 하루빨리 재개발이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재개발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이 동네와 이 집에서 이사 가기 싫어졌다. 아니, 그냥 재개발된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가 싫었다고 해야겠다. 이사를 가도 2~3년 뒤 재개발이 끝난 뒤에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으로 지냈다. 지나가다가 들려도 몇 년 후에 다시 이사 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고 새로 지어진 집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 굳게 닫혀있는 문과 그 문을 잠그고 있는 쇠 자물쇠를 보는 순간 나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1층 현관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던 자물쇠는 나에게 많은 메세지를 던져줬다.

 

아마도 그전까지 내가 좋았던 기억과 많은 추억이 남겨져있는 이 동네와 아파트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동네가 들어선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지금의 산수동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한쪽에 여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동네가 있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서 좋았던 기억들로 가득 차 있었던 곳일 수도 있고, 화려한 뷰를 자랑하는 곳일 수도 있고 또는 학창시절을 보냈던 장소, 태어났던 장소 등등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자꾸 생각나고 한 번쯤 다시 가고 싶고 돌아가고 싶은 곳. 그곳이 바로 자신의 고향이 아닐까?


나에게 산수동은 최고의 동네이며 많은 추억이 담겨있던 동네였다. 이제 재개발이 들어가고 건물들과 상점 그리고 주택들이 사라져 가고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만 카메라를 들고 쫓고 있을 뿐이다. 겨우 동네 하나가 사람들의 안전과 미관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서 재개발하는데 무슨 이리 호들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산수동은 내게 분명 이런 동네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앞으로 내 인생을 살면서 산수동 그리고 이 호남맨션 아파트 주위를 광주에 올 때마다 들릴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20대를 보냈던 이 동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나에게 이만큼 애정이 남아있고 사라져 가는 걸 아쉬워하는 동네가 있을까? 


유난히 내 볼을 꼬집어가며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2022년 10월 마지막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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