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고 고맙고 미안하다.
서귀포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산양큰엉곶에서 나와 제주시에 위치한 펜션에 도착하여 저녁을 해결하고 혼자 음악을 들으며 해안도로를 걷고 있었다. 한창 제주도에 있을 때라 나는 sns 스토리에 제주에서의 생활을 자랑하기 바쁘던 와중에 고등학교 때 친구한테서 카톡이 왔다.
(친구의 실명 보호를 위해 친구 이름은 ㅇㅇ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너 제주도냐? 우도 한번 들려서 ㅇㅇ이 얼굴 보고와 애 낳았어"
이 소식을 듣고 그동안 친구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으며 애기를 낳았다는 소식에 한번 더 놀랐다.
카톡을 읽고 잠시 후 나는 답장을 보냈다.
"내일 일정 취소하고 다녀올게"
2010년 나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시작할때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어영부영 적응을 잘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났고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면서 전학 온 학교에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챙겨줬던 친구들이 있었다. 비록, 그동안 살아왔던 동네는 달랐지만 학교에서는 같이 붙어 다니고 때로는 같이 놀러 다니기도 하며 항상 나를 챙겨줬던 고마웠던 친구들이었다. 졸업 후 연락을 하고 지내며 심지어 필자가 공무원 준비할 때 메시지를 보내줬던 친구는 노량진까지 직접 한약을 박스채로 차에 싣고 왔던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우도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친구는 그 무리 중 한 친구였으며 이 친구는 원래 고향이 제주도였다. 마지막으로 이 친구들을 만난 건 군대 휴가 때 같이 술잔을 기울였던 걸로 기억하고 그 이후에는 각자의 삶에 찌들어 간간히 연락만 하고 지낼 뿐 만나지는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한 친구는 일 때문에 지방으로 떠나버리고 나 또한 공무원 준비, 해경, 사진 보조 일들을 하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이 친구는 군 제대 후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다음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제주시에서 우도로 향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우도행 배를 타기 위해 성산항으로 향했다.
긴장과 설렘의 공존
관광목적으로 우도를 향하는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때 같이 다녔던 친구를 10년 만에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것도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를 낳았고 나는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성산항까지 운전하고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나 살길 찾는다고 내가 주위 사람들을 챙기지 못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5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나는 어느새 성산항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 나의 눈에 은행 간판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잠시 도로변에 차를 멈추고 현금 10만 원을 인출하여 흰색 종이봉투에 담아 나의 바람막이 앞주머니에 넣어 지퍼까지 올려가며 안 빠지도록 단단히 챙겨놨다.
그렇게 나는 성산항에 도착하여 카메라와 지갑, 신분증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현금봉투가 잘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우도행 배 표를 끊어 탑승하였다.
날씨는 곧 비가 쏟아질 만큼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으며 10년 만에.. 그것도 제주도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배가 출발하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갈매기들의 무력시위
배가 출발한다는 소리와 함께 성산항을 막 떠나기 시작하였을 때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매기 한 마리 두 마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분의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갈매기 떼는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 같이 날아오기 시작하였으며 우리 주위를 계속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무언의 압박을 하듯이 우리 주위를 정말 가깝게 날기 시작하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눈빛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새우깡 내놔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우깡을 갈매기들을 향해 뿌렸으면 갈매기들은 배가 지나다닐 때마다 떼로 몰려와 새우깡을 달라는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근데 31살 나이 먹은 나 자신도 동심으로 돌아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새우깡을 준비하지 못하였고 주위 사람에게 달라고 하기도 약간 그랬다.
그렇게 나는 지난 영화에서 봤던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고 아직 당첨발표를 하지 않았던 복권 종이를 꺼내어 하늘 위 갈매기들을 향해 팔을 올렸다.
잠재적 가치 27억의 먹이!
이거 먹으면 너네 자ㅇ 아파트에서 거주 가능!
하지만 갈매기들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아무 갈매기도 나의 로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다른 새우깡을 찾아 날아다녔다.( 실제로 사진에 나온 복권 당첨금액은 0원이었다.)
배가 우도에 도착할 때쯤 갈매기들은 공짜밥이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자신들만의 무리를 지어 다른 공짜밥을 향해 떠나갔고 배에서는 도착 방송이 나왔다.
"잠시 후 우리 배는 우도 선착장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아무튼 혼자서 갈매기들과 놀고 있다 보니 어느새 배는 우도에 도착하였고 나는 배에서 내려 10년 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우도 선착장에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