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9. 가파도 사진관 - 따뜻한 조언

by 림부스


텔레비전. 유튜브, sns, 책 등등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우리는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만약 그 시간이나 특정 인물이 인상 깊었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알아가기 위하여 검색을 하기도 하고 어떤 길을 걸어왔고 무슨 일을 하는지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누군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기도 하면서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분이 있었고 잠시 2017년으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여수에 위치한 해양경찰교육원에 있었다. 누군가는 내 자신이 입고 있는 해양경찰 제복을 부러워하며 선망의 대상 직업이었지만, 나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내 동기들은 좀 더 좋은 곳으로 발령받고 자신이 가고 싶은 발령지로 가기 위하여 수업을 열심히 듣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하여 모든 점수를 알뜰살뜰 챙기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사표를 제출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기에 시험 성적이든 어디로 발령 나든 아무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그저 나는 다른 사진가분들의 사진을 찾아보고 어떠한 사진을 찍어왔고 어떤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으신지 구경하며 애써 시간을 꾸역꾸역 소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잠시 생각했다.


'바다와 관련된 직업을 주제로 작업하시는 사진가는 없나?'


나는 핸드폰으로 바다와 관련된 사진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바다, 해양생물, 새 , 동물. 섬, 해녀 등등 다양한 한 주제의 사진들이 세상에 많이 나와있었고 여러 사진을 보던 와중에 해녀 사진 한 장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그 사진이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이 사진에 대해 찾아봤다.


유용예 작가님이 작업하신 '할망바다' 사진집의 일부였고 자라나는 머리카락처럼 계속해서 떠오르는 사진과 궁금증에 사로잡혀있었다. 밥 먹을 때, 퇴근할 때 등등.. 대한민국에는 '해녀'를 주제로 촬영한 사진들이 많다. 물론, 그분들의 사진도 훌륭하고 다양한 메세지를 주면서 좋은 사진이지만 '할망바다' 사진집을 봤을 때 그동안 내가 봐왔던 해녀 사진과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딱 단정지어 표현할 단어가 없었고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결국 사진집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진집이 언제 도착하나 오매불망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쯤 유용예 작가님의 '할망바다' 사진집이 도착했다는 알람을 받았을 때 나는 집에 가스불을 켜놓고 나온 주인처럼 겁나 집으로 달려갔다. 쉬는 날이면 방구석에 앉아 사진집을 보면서 혼자 생각에 빠져보기도 하고 상상해보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현재 내 스스로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유용예 작가님의 다른 사진들과 기사, 영상,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어떻게 사진작업을 하셨는지 등등 여러가지를 알아봤고 내 스스로를 작게나마 한 계단 더 올라가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2022년 3월 가파도를 처음 찾아왔을 때 사실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릴 목적으로 찾아왔었지만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못했고 선생님은 일정이 있으셔서 자리를 비우셨고 나는 인사를 드리지 못한 채 섬에서 나왔다. 인사를 드리지 못했던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었던 걸까? 아니면 선생님에게 조언을 듣고 싶었던 걸까? 이번 5월 방문하기 전 미리 선생님에게 일정을 말씀드렸고 선생님께서는 일정이 있으신데도 귀한 시간을 나에게 할애해주셨다. 가파도 한구석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핸드폰 메세지 알람이 울렸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진관으로 향해 걸어갔다.


LSH_9571-RE.jpg
LSH_1126-RE.jpg



가파도 들어오셨나요?



"안녕하세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사진관에 들어갔고 유용예 작가님은 환한 미소와 함께 답해주셨다.


"안녕하세요. 임성환씨? 들어오세요. 사진 많이 찍으셨어요?"


나는 슬리퍼로 갈아 신고 귀하고 소중한 선생님의 작업공간이자 가파도사진관에 들어왔다. 그동안 유용예 작가님께서 작업하신 사진집, 사진 그리고 다양한 소품들과 책들이 있었으며, 특히 제주 아트페어에 출품하셨던 작품도 내 두 눈으로 봤으니.. 이런 호강이 있나...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고 나는 선생님에게 내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길, 선생님을 알게 된 계기와 할망바다 사진집을 보고 느낀 점, 그리고 거기에 숨어있는 나만의 사연까지..


나는 고민이 많았던 시기이고 내 앞길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 격변의 시기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듯싶다. 사진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같은 시간이었고 나는 선생님에게 고민과 걱정거리 그리고 속마음을 털어두기 시작하였다. 정말로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선생님께서 경험하셨던 이야기 그리고 극복했던 방법도 말씀을 해주시고 옆에서 공감도 해주셨다. 유용예 선생님과의 모든 이야기를 공개할 수 없으나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한마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꾸준함입니다. 정말 꾸준히 해보세요"


어쩌면 나는 가장 당연하고 지켜야 하는 걸 잊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남기고 기록하고 사진을 통하여 이야기를 펼치고 싶은 길이 있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내 스스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고 있었다.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괴로움에 휩싸여 흔들리고 내 마음속은 '버텨야 해! 버텨야 해!' 외치고 있었지만 간신히 벼랑 끝에서 버티는 기분이었던 나는 선생님과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새로운 엔진을 장착한듯한 동력을 얻었고 40분간의 대화였지만 정말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하였다.


처음 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고 격려해주고 조언까지 해주신 유용예 선생님이 너무나도 나는 감사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사진에 대해서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기도 하였으며 내 사진이 진짜 자신 있는 사진이었는지, 내가 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사진으로 표현을 잘하고 있는 건지 등등 그저 남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이쁜 사진들만 찍은 남루한 사진들이 아니었는지...


여담이지만 사실 나에게도 내가 꿈꾸던 작업공간과 사진관 그리고 내가 그려왔던 사진적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말해야 하나...? 내가 그 기회를 살렸을지 아니면 시행착오로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2020년 지방에 위치한 어느 작은 도시의 청년 지원사업에 합격하였고 2년 동안 내가 계획하고 그려왔던 사진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누군가의 심한 반대로 인하여 가지 못하였다. 정말 내가 가고 싶고 하고 싶고 내 스스로 얻은 기회였지만 결국 나는 가지 못하였다. 그때 그 순간이 그렇게 그리운걸까? 아니면 마음 한켠에 아직도 남아있는걸까? 아니면 내가 내가 그때 더 강력하게 밀어 나가고 주장을 했어야 했나...? 너무나도 오래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생각이 든다. 부디 이 경험이 나에게는 좋은 약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합격한 지원사업에 2년 동안 나의 사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이면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했을까? 아니면 나만의 세계에 갇혀있을까?'


계속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그 사건


나는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해 털어두고 나의 생각에 대한 공감과 위로 그리고 조언까지 포함한 따뜻한 말 한마디가 듣고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LSH_1137-RE.jpg


인생숙제를 끝내고 또 새로운 인생숙제가 생겼다.


이야기를 하고 선생님께서 나에게 '물 벗' 사진엽서 두 장을 선물해주셨다.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자 가치 있는 사진엽서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존경하는 사진작가에게 직접 사진엽서를 선물을 받는다는 일은 나에게 정말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가파도로 향하면서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 아직 많이 부족했지만 전시회에 출품했던 사진과 수동식 타자기로 적은 편지를 들고 찾아갔다. 처음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시간이지만 나는 평소에 선생님의 사진을 봐왔었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한 분이기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함께 드리는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지로 직접 프린팅한 작은 사진을 액자에 담아 드렸고 정말 많이 부족한 제 사진을 받아주셨다.


유용예 작가님께서는 또 다른 일정이 있으셔서 가파도에서 제주로 나가는 마지막 배에 승선을 하셔야 했기에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었다. 선생님께서는 작은 섬 특성상 일찍 끝나는 식당이기에 저녁을 어디서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시며 유용예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가파도에서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여기까지 오며 가파도 해녀 문화를 기록하며 가파도사진관 그리고 작업공간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까...?'


LSH_1110-RE.jpg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선생님의 '할망바다'사진집은 내 작고 허름한 사진관이자 작업실에 전시되어 있고 사진 찍으러 오시는 분들은 한 번씩 사진이 나올때까지 기다리며 사진집을 구경하시곤 한다.


이후 나는 내가 생각해왔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사진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아마도 내가 그분들에게 진정성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게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실패하고 계획이 틀어지는 과정 속에 하나를 더 배우면 이러한 과정은 내 경험이자 자산으로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뒤늦게 배우는 중이며 앞으로도 내 사진적 담론을 꾸준히 만들어 갈 계획이다.


그리고 여전히 알 속에서 발버둥 치며 나의 돌멩이는 계속해서 굴러가고 있다.



제주에서 모든 일정이 끝나갈때쯤 나는 선생님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등등 진심을 담아 감사의 메세지를 보냈었다. 그리고 제주공항에서 김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 답장이 왔다. 그렇게 나는 답장을 읽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긴 발걸음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했다.



반가웠어요

멀리 섬까지 와줘서 고맙고 감사해요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스스로의 사진적 담론을 만들어 가시길..





LSH_1120-RE.jpg


LSH_1099-RE.jpg
지금은 저를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유용예 선생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겠습니다.



LSH_1103-RE2.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