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섬 제주도. 그 섬에서도 배를 10분 정도 타고 작은 섬으로 들어와서 1박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쉬운 기회가 아니지 않은가?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 고작 해발 20m이며, 바다 한가운데에서 산방산, 한라산, 그리고 제주 바다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신비의 섬 가파도. 눈앞에 가장 바로 제주도 혹은 가파도가 보이지만 날씨가 좋지 않거나 바다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건너갈 수 없는 바닷길. 관광객이 빠져나가고 제주도로 향하는 마지막 배가 떠난 뒤 가파도의 모습은 나에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내일 아침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있고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가파도를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겠나 생각에 가파도 전망대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들어와 다시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5월 중순의 시간. 본격적인 여름 날씨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해가 완전히 늦게 지지 않는 시간이었고 해는 바다 위에 떠있으며 본격적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하였다. 카메라와 삼각대 장비를 챙겨 민박집에서 나오던 와중 운동을 하시는 민박집주인 아저씨와 마주쳤고 아저씨는 나의 모습을 보시더니 크게 말씀하셨다.
"청년! 사진 찍으러가? 저쪽으로 걸어가 봐 노을 예술이야 그리고 한 바퀴 돌아봐"
"감사합니다"
나는 짧은 대답과 함께 민박집주인 아저씨가 알려준 길 바닷가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제주로 향하는 마지막 배가 떠나고...
오후에 가파도에 들어왔을 때는 관광객들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선생님과 대화를 마치고 저녁을 해결하니 시간은 6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가파도에서 제주 서귀포 운진항으로 나가는 마지막 배가 떠났다. 이제 정말 가파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주민 그리고 1박을 하는 관광객들만 남아있었다. 불과 3시간 전과 비교를 해보면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나는 더 여유롭게 가파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3월에도 방문을 했었지만, 가파도 전체를 전부 구경하기에 2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은 정말 짧은 시간이다. 오히려 나는 시간도 많이 남았고 저번 3월에 가지 않았던 길. 즉, 민박집 사장님이 추천해준 길을 선택해서 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언제나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느낌은 뭔가를 탐험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내 눈앞에 어떤 풍경이 나타날지, 나에게 어떤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설레는 마음으로 가지 않겠는가? 나는 가파도 주민이자 민박집 사장님의 추천을 굳게 믿고 가파도에서만 볼 수 있는 노을을 구경하기 위해 걸어갔다.
그리고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나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등대와 바다 위에서 지고 있는 노을을 마주하였고 역시 그 선택은 옳았다는 것은 풍경이 증명해줬다.
(여행을 가면 현지 주민들의 말을 꼭 들어야 한다.)
등대
나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하였다. 오른쪽은 섬 가장자리를 따라 뻗어있는 길 그리고 왼편에는 살랑살랑 불고 있는 바람과 함께 움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내 귀에 들리는 파도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물에 반사되는 노을빛과 바다를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있다가 바다 한가운데 있는 등대에 시선이 가기 시작하였다.
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우뚝 솟아있는 등대.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되면 등대의 역할은 더욱 빛이 난다. 바다에 다녀오는 배들을 안전하게 항구까지 안내해주는 역할을 하며 듬직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등대. 하지만, 이 날따라 바다 한가운데 있는 등대가 외로워 보이기 시작하였다. 사진으로 봤을 때나 실제로 봤을 때나 항상 바다를 지키고 있고 위에는 해 밑에는 바다와 함께 있어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았겠지만 유난히 등대가 흔들리며 다르게 보였다.
내가 많이 흔들리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자꾸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 때문에 내 자신이 등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내가 정말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어서 등대에 기대면서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달라고 애써 신호를 보내는 중이었나 보다.
관광객이 빠져나가고 고요한 가파도
가파도 전망대에 올라와 제주도를 향해 바라봤다. 낮에 바라봤던 모습과 어떤 모습이 다를지,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시간 가파도의 전체적인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가파도에서 1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바다 건너 산방산과 한라산이 우뚝 솟아있었고 약간의 거센 바람과 바람소리 그리고 사람 손길을 많이 탄듯한 가파도 고양이들이 우는 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관광객이 빠져나간 가파도의 모습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오히려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 느끼면서 나의 공허한 마음을 잠시나마 채울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해가 저물어가면서 가로등 불빛은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였고 건너편 제주도에서도 불빛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황금빛 보리밭, 전망대 주변과 골목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고양이들 그리고 간간히 들리는 사람들 목소리와 함께 전동차를 타고 돌아다니시는 주민 할머님들까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작은 섬에서 큰 섬을 바라보는? 아니면 제주도 옆에 붙어있는 작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이라 할까?
뭐라 딱히 표현할 단어가 없다. 직접 느껴보지 않는 이상...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은 더 강하게 불기 시작하였고 나는 혹시 몰라 챙겨뒀던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다시 가파도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갔다.
반대편 길을 걷다가 나는 한 바위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냥 일반 바위와 다를 게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 바위를 보는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위 앞에 앉아 저 의문의 바위를 오랜 시간 지켜봤다.
저 바위는 바다 건너 높이 솟아올라있는 산방산을 바라보는 걸까?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일까?
둘 다 아니라면 저 바위도 산방산처럼 자기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인 걸까?
멀리서 누군가를 열심히 응원이라도 하는 걸까?
원래는 구경만 하고 다시 돌아가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삼각대와 카메라 장비를 다시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카메라와 함께 하염없이 바다와 바위 그리고 산방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내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시선이 많이 담긴 사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했던 시간이자 장소 가파도.
하염없이 바다와 바위를 바라보고 가파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완전히 어두컴컴한 저녁이 되어버렸다.
가파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청보리 막걸리를 마시기 위하여 숙소로 걸어가던 와중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고 나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가파도의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뒤덮여있었고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이 나를 쳐다보는듯한 기분이 들었고 내 스스로가 엄청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현대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심에 거주하며 도심의 밤하늘은 빌딩들의 불빛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는 우리가 은하수 혹은 별을 구경하려면 산속까지 들어가거나 명당을 찾아 떠나야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가파도에서는 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사는 우리는 밤하늘의 별 혹은 은하수를 보며 위로받곤 한다. 즉, 이 말은 정작 우리 눈에는 잘 안 보이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어떤 것이라도 항상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는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별들은 우리 곁을 항상 지키며 빛을 내며 바라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밤하늘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을 보면 신기하게 반응하는 그런 상황까지 와버렸을까?
일상을 포함하여 모든 일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회사, sns, 행동 모든 생활에서 각자 자신을 관심 있고 주의 깊게 멀리서 바라보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티를 내지 않을 뿐...
나는 숙소에 들어가 청보리 막걸리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가파도에서 제주로 향하는 배를 타고 다시 제주로 향했고 배에서 내려 렌터카에 짐을 옮기는 동안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제주도에 여행 왔는데 가파도에서 1박 하고 나오니 어디 여행을 다녀온 이 기분은 뭘까?'
온전히 나에게 집중을 할 수 있었던 장소와 시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가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