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섬으로
3월 가파도를 방문했을 당시 허락된 시간 2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 짧게 느껴졌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가파도에서 1박을 하고 다시 제주로 나오기로 하였다. 제주도로 출발 1주일 전 가파도에 있는 민박집에 예약을 하였다. 사실 어느 민박집에 예약을 할지 결정장애로 미루고 미루다가 3일 이상 시간을 허비하였고 내가 머물고 싶은 민박집은 빈방이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아무튼, 나는 운진항에 주차를 하고 가파도로 향하는 배에 탑승하기 위해 다시 짐을 챙겼다. 여기서 약간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분명히 제주도 섬으로 여행을 왔지만 여기서 또 작은 섬에서 1박을 해결하기 위해 짐을 챙겨 배를 타고 가파도로 들어가다니.. 물론 허락된 시간 안에 가파도를 구석구석 다 볼 수는 없겠지만, 마지막 여객선이 제주도로 돌아가고 관광객이 빠져나간 뒤 한적한 가파도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다시 찾은 가파도
약 2달 만에 다시 가파도를 찾아왔다.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처음 왔을 때 보다 살짝 익숙한 느낌이었다. 남들은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닐 때 나는 1박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카메라 장비와 노트북 그리고 어느 정도 짐이 있기에 짐부터 숙소에 풀고 천천히 돌아보기 위하여 마치 가파도를 자주 와본 듯한 걸음걸이로 짐을 들고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지난 2달 사이에 가파도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봄소식을 알려줬던 노란 유채꽃은 사라지고 황금빛 비단으로 뒤덮인 청보리밭의 보리 그리고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었다. 사실 가파도는 청보리밭으로 유명한데 특히나 3월~5월 그 사이 즉, 4월에 푸른색으로 물든 청보리밭의 모습과 꽃들이 만개해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가파도를 방문한 건 5월 중순이었고 청보리는 푸른색을 빼기 시작하며 황금빛 비단을 덮어둔 듯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사실 4월에 청보리가 절정인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안 맞아 5월에 방문하게 되었고 늦은 방문은 오히려 나에게 가파도 청보리밭 = 푸른 청보리밭 고정관념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은 있지 않는가? 축제 혹은 절정의 모습보다 뒤늦게 방문했을 때 오히려 자신이 생각해왔던 모습과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었고 그 모습은 나에게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해줬던 기억이랄까?
숙소에 도착하여 민박집 주인님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나는 카메라와 가방을 챙겨 본격적으로 가파도를 이리저리 여유롭게 돌아다니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변덕스러운 날씨의 격한 환영인사 그리고 비단 물결
가파도에 도착하여 숙소로 이동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날씨는 괜찮은 듯싶었으나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하늘에 구름이 많아지기 시작하였고 삼다수의 짠내 나는 향기를 품은 가파도의 바람은 점점 더 격하게 환영인사를 해줬다. 중간에 다시 하늘이 맑아지며 햇빛과 푸른 하늘이 보일 듯 말 듯 하였으나 금방 다시 구름 뒤로 숨어버리는 술래잡기의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가파도를 가로질러 가파초등학교를 지나 다시 보리 밭쪽으로 걸어갔다.
황금빛 비단을 뒤덮은듯한 가파도의 보리밭의 모습은 오히려 청보리밭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바람이 불면 황금빛 보리들이 바람 따라 움직이는데 이 모습은 마치 정말 '비단이 움직이며 만드는 물결?'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바람에 따라 살랑살랑 움직이면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고 뒤따라 움직이는 보리들은 그 잔상을 만들면서... 아... 이게 진짜 글로 설명하려니 힘들다.
(사실 급하게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뒀으나 여기에 올릴 때 이상하게 나온다. 내가 직접 봤던 색이 아니라 뭔가 포맷이 안 맞다던지 혹은 변환이 잘못되었는지... 영상 전문가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그렇게 가파도를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섬을 가로질러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 골목골목 돌아다니기도 하고, 전망대에도 다시 올라가 보기도 하고 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바다와 파도를 구경하기도 하였다. 너무 걷기만 하면 재미가 없었고 뭔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자 중간중간 해안가 바위에 걸터앉아 산방산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더니 또다시 고민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자 왔는데 고민에 빠지고 걱정은 또다시 붙어있는 혹 마냥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어디선가 큰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고 나는 다른 관광객들은 가파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바라보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도를 돌아다니는 관광객, 보리밭 주변에서 산방산을 배경으로 열심히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청춘들, 핸드폰 카메라로 코스모스를 이리저리 찍고 있는 어르신들, 한 손에 청보리 핫도그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꼬마 아이까지 모두들 행복한 표정으로 가파도를 구경 중이었다.
다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리저리 걷고,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쯤 내 핸드폰에 메시지 알람이 울렸고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다시 발걸음을 급하게 옮기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