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야기로 돌아가서,
쿠키 프랜차이즈를 포기하고 직접 제과를 배워보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창업반은 소그룹으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직장을 다니며 수업을 받기에 상황이 안 맞으면 결석도 많아 일대일로 수업을 받을 때도 있어 좋았다.
선생님은 굉장히 친절하셨지만 성격이 급하셔서 인지 우리가 기초도 안 돼있어서인지 연습을 하다 막힐 경우 직접 많은 부분을 도와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해보는 부분이 부족해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다들 창업에 대한 열정과 설렘이 있어선지 수업 분위기는 항상 유쾌하고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만든 빵이 무지 맛있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 직접 해보고 나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내 상황에 맞는 판매방식을 생각하다 자동판매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요즘에서야 무인점포가 점차 늘고 있어 자판기에 대한 창업이 더욱 떠올랐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자판기는 건물 안이나 지하철역에 있는 그저 그런 인식이 있었다. 차별화된 자판기를 위해 디자인을
기존 자판기와는 다른 형태로 디자인해봤고 특허를 내봐야겠다는 생각에 실용신안으로 신청을 냈다.
몇 개월 후에 결과 발표가 났는데 결과부터 말하면 떨어졌다. 조금 욕심을 내서 실용신안으로 신청했는데 그보다는 디자인 특허를 냈어야 했나 싶다. 그래도 특허 신청 중인 기록만으로 정부에서 하는 여러 가지 창업지원 공모전에 지원할 수 있었고 꽤 도움이 되었다.
서류전형에 합격하여 일주일간 합숙하며 사업계획서를 완성하고 마지막 날 결과 발표를 하는 공모전이 있었는데 합숙은 부담스러워 집과 센터를 통학하며 지냈던 기억이 난다. 정부지원 공모전을 지원할 때쯤부터 나와 생각이 맞아 함께 하게 된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디자인을 전공해서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도와주니 꽤나 든든했고 일도 더 재밌어졌다. 내가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그 친구가 파워포인트로 완성도 있게 디자인해주니 발표하기 전부터 자신감이 생기는듯했다.
일주일 동안의 교육도 그곳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과 창업아이템들 그리고 다들 꿈을 향해가던 눈빛들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렇게 일주일을 즐겁게 지내고 떨어졌다. 떨어져도 마냥 즐거웠던 나는 꿈을 좇으며 머리에 꽃을 단것 같았다.
내가 떨어진 이 공모전은 창업비용을 바우처식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나름 경쟁이 치열했고 결국엔 나는 창업 아이디어를 담보로 청년창업대출을 받았다. 신용보증재단에서 창업 승인을 받고 일어나려는데 상담해주셨던 직원분이 명함을 건네며 잘되시면 저도 할 수 있게 연락 바란 다는 말을 해주셔서 꽤 힘이 났었다. 떨어진 공모전을 되뇌어보며 자판기도 자판기지만 쿠키에 대한 나의 전문성이 부족하여 이렇게 된 듯도 하여 다시 뉴질랜드 쿠키가 떠올랐다.
검색해보니 그새 벌써 프랜차이즈 다섯 군데 정도가 생겼고 홈페이지 작업도 잘 돼있어 본사를 찾아가기 쉬웠다. 큰 빌딩의 사무실이 꽤 깔끔했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직원분이 안내하시며 어떻게 오셨냐며 말을 건넸다. 나는 조금 긴장되게 자판기를 통해 쿠키를 판매하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물었다. 여직원은 사장님이 오시면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하며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했다. 그렇게 건물을 빠져나와 연락을 기다렸고 따로 연락이 오진 않았다. 연락을 기다리며 직접 매장도 가서 쿠키를 사 먹어봤고 뉴질랜드에서 먹던 그 맛이었다. 가격대는 좀 나갔지만 재료가 좋아 젊은 층에 먹힐 것 같기도 했다. 몇 개월이 흘렀을까... 어느 정도 기다리다 난 다시 직접 전화를 해보기로 했고 사장과 통화가 되어 직접 만나기로 했다. 여의도의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몇 달 만에 분위기가 바뀌어있었다.
직원들은 점심시간이라 모두 나갔다며 사장이 인사를 건넸다.
난 내 계획을 말했다. 자판기를 통해 쿠키를 팔고 싶다고 했는데 흔쾌히 그렇게 하자는 게 아닌가
쿠키를 따로 구매해서 판매하는 걸로 하고 발주서를 써줄 테니 입금을 하라 했다. 배로 쿠키 도우를 받고 있어 여유 있게 세 달 전에 구매를 하고 있다며 입금해주면 이번에 오는 양의 일부를 준다고 했다.
그럴싸했다. 그렇게 쿠키를 이천만 원어치를 사고 기다리며 자동판매기를 알아봤다.
그렇게 쿠키를 기다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사장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가 꺼진 것 같았다. 어라? 하는 생각이 들며 설마~ 매장 5군데도 다 잘 돌아가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처음 찾아갔을 때부터 이미 사업이 부도위기였다. 초반부터 무리하게 시작하다 사업이 시작되면 처음 버텨야 하는 시기를 버티지 못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근데 마음이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신기했다. 엄청난 일이고 나름 일하면서 창업 준비하느라 3년이란 세월이 걸려 여기까지 왔는데 멀쩡 한 편이었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첫사랑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오랜 기간 교제하던 어느 날 내일 보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지고 다음 날 연락이 두절되었다. 계속 전화를 하니 결국 전화기가 꺼졌다. 그때부터 한동안 주말만 되면 잠수를 타는 일이 잦았고 결국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게 발단이 되어 헤어졌다. 그때 심장이 덜컹하고 느꼈던 굉장한 충격이 오늘날 이런 일들에서 덤덤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보니.. 그때는 참 겪기 싫었던 일이었는데.. 세상에 참 버릴만한 일이 없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맷짚인 건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