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만나제과점

첫 출근에 사장이 한 말 "누구세요?"

by 로로 Feb 16. 2022

일주일 전 오전 파트타임 알바를 구했다.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본 뒤 첫 출근을 하는 날이다.  신도시에 새로 생긴 빵집이라 주변에 상가도 없는 편이어서 멀리서부터 노란 간판이 눈에 띈다. 회사원들은 바쁜 출근길, 나는 제과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게가 가까워올수록 기분 좋은 빵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덩달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며 가게의 나무문을 열고 기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누구세요~?


뜻밖의 사장님의 반응에 황당해서 웃음이 터졌다. 당황한 것도 잠시 지난주에 면접 봤던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고 나서야 이제 생각났다는 듯이 오전 할 일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설명을 들으며 가게를 살펴보니 발효기에 가득 찬 빵들이 사장의 정신없었던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빵집은 오전이 제일 바쁘구나 생각하고 앞치마를 차려입고 난생처음 캐셔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빵 종류가 많지 않아 외우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지금 막 나온 뜨거운 빵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랑딸랑, 가게문에 달아 놓은 작은 종소리가 울리고 첫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20대 초반의 젊고 깔끔한 생김새의 아가씨였다.  난 친절하게 인사하고 계산대 앞에 서서 손님이 빵을 고르길 기다렸다. 손님이 말하면 내가 꺼내 주는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어 빵을 포장해주고 수월하게 계산을 끝마친 순간, 손님이 오백 원을 계산대에 내밀었다.


뭐지? 하고 표정이 멍해지자 손님 입에선 헐..이라는 짧은 단어가 나왔다.


그래도 난 처음 이어선지 뇌가 그대로 굳은 채 사장님을 바라봤고 사장님도 빵을 굽다 말고 멍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손님은 우리 둘의 표정을 보고 설명해줘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직감했다. 잔돈 받기가 싫어서 오백 원을 내민 거니 거스름돈 오백 원을 합해서 천 원으로 달란의미였다고..


우리 둘 다 표정이 밝아지며 바로 천 원 지폐를 챙겨 거슬러주자 손님은 시크한 표정을 지으며 가게를 나갔다.


첫 손님으로 뭔가 제대로 신고식을 치르고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오전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이렇게 투잡을 하게 되었다. 3년 전 문득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하다 뉴질랜드에 여행 갔을 때 줄 서서 먹었던 쿠키가 생각이 났다. 자유로운 성격상 나에겐 나만의 장사가 꼭 하고 싶어 졌다. 한참 꿈에 대한 강연을 많이 했던 시기여서 인지 내가 꿈이 생기고 나니 티브이에서 그런 강연만 보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생각만 하던 일들을 구체화시키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많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우연히 아침마당을 보던 중 캘리최라는분이 불어도 못하지만 꿈을 따라 프랑스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무작정 뉴질랜드의 쿠키 본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뉴질랜드는 그때 당시 뭐든 느린 편이었다. 인터넷도 느리고 일처리나 이런 것들이 천천히 여유 있게 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지내던 집 앞에 횡단보도를 그리는데 2박 3일이 걸리는 걸 보고 또 알 수 있었다. 그런 걸 감안해서도 일주일이 넘었지만 답장도 수신확인도 되지 않았다. 회사의 이메일을 다시 확인하던 중 fax번호가 눈에 띄었고 내 이메일 주소와 메일함을 확인해달라는 짧은 메시지를 적은 뒤 큰 서점에 가서 팩스를 혹시 몰라 세 통보 내고 나서야 답장이 왔다.  예상대로 내 메일은 스팸함에 있었고 답장에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프랜차이즈를 준비 중이며 한국 판권을 산사람을 통해 내가 창업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자본금도 없었을뿐더러 자동판매기를 통해 특별히 판매를 하고 싶어 고민만 하다 내가 직접 쿠키를 구워보는 방향으로 바꿨다. 그렇게 나의 꿈이 시작되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점차 풀어가겠다.


이렇게 20대의 꿈만 좇아 무모히 행했던 신나던 추억들은 나에게 빚이라는 선물을 주었고 덕분에 더욱 성실하게 사는 열매를 맺게 된 듯했다. 그래도 남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빚을 진 것이 후회가 전혀 안될 정도로 하고 싶은걸 시도는 해봤다는 기쁨이 더 컸다.


빚도 지고 첫사랑과의 이별도 겪고 열심히 20대를 살고 난 뒤 30대의 시작은 무언가를 쫓기보다 지금 행복하자는 생각 그리고 목적지를 잠시 설정하지 않은 채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미국엔 happy map이라는 어플도 있지 않은가.. 목적지까지의 지름길뿐만 아니라 볼거리, 풍경 등이 좋아 가는 동안 행복할 수 있는 길도 알려주는 어플이라고 했다.


 나는 목적지만을 보며 쫓아가던 나에서 happy map을 보며 그저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 일 두 가지를 하며 이 순간을 지내왔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