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며 점차 점차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다. 나의 계산 실력도 개미만큼 좋아지는 듯했다. 눈이 내리거나 비가 오기라도 하는 날엔 가게 안의 빵 냄새가 더욱 진동하는 듯했고 이 빵 냄새가 밖으로 퍼져선지 그런 날은 10평 정도의 좁은 가게가 사람들로 꽤 붐볐다. 가게 근처에 규모가 큰 병원이 있었는데 병원을 들렀다 우리 가게에서 빵을 사시는 분들이 있었다. 어떤 분들은 간호사나 의사에게 빵을 선물용으로 포장해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직원분이 출근 전 우리 가게를 들리시기 시작했고 아침을 못 드신 날엔 여기서 빵으로 대신하시는 듯했다. 자주 오시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사는이야기를 잠깐씩 얘기하다 가시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 지나서 다른 남자분과 함께 오셨다. 자주 오시던 분은 카운터로 와서 늘 인사하던 때처럼 인사를 하고 여기는 우리 병원 원장님이시라며 소개를 해주셨다.
원장님은 유쾌하신 분위기의 인상이 좋으신 분이었다. 반갑다고 하시곤 오늘은 내가 직원들한테 줄 빵을 사러 왔다 하시며 싱글벙글하신 모습이었다. 빵을 종류별로 3~4개씩 고르셨다. 난 불러준 빵들을 포장했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드를 받았다.
앞에서 함께 온 직원분에게 내가 아들 카드를 몰래 가져왔다며 우리 아들이 쏘는 거네 하시며 나와 직원분을 번갈아 보며 웃으셨고 나도 웃으며 카드를 받아 결제를 했는데 카드단말기에 도난카드라고 뜨는 게 아닌가.. 잔액부족은 가끔 봤는데 도난카드라고 뜨는 건 처음 봐서 당황스러워 카드를 돌려드리며 이 카드가 지금 안된다고 하니 그럴 리 없다 하시더니 살짝 당황하시는 듯했다.
다시 한번 해보라고 해서 해보니 똑같이 뜨길래 도난카드라고 뜬다 하니 더 당황하시며 본인의 카드를 건네주셨다. 아들이 대학생 정도 된 듯했는데 분실한 줄 알고 신고한 건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단말기에 도난카드라고 실제로 찍힌 건 처음 봐서 꽤나 기억에 남는다.
손님이 많을 때는 많은 대로 시간이 빨리 가서 좋았고 없으면 멍 때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좋았다. 이게 장사의 묘미인가 싶다가도 내가 사장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우리 가게문은 갈색 나무로 된 문이었는데 꼭 문이 어린 시절 잠 시살던 우리 집 문과 비슷해서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엄마가 장사를 시작하시며 바로 위층에 집을 구하셔서 한동안 그 집에서 살았는데 그 집이 있던 동네의 친구들과 친해지며 집으로 꽤 자주 친구들을 데려왔었다. 어린 시절 늦둥이라 외동같이 크던 나에겐 친구들이 꽤나 중요한 존재였다. 친구들에게 TV 밑에 있는 서랍을 열어 보이며 엄마가 장사를 했기에 항상 준비해놓은 동전통을 자랑했다. 친구들은 장난감 외에 색다른 자랑거리에 흥미를 느끼는 눈빛들이었다.
그때의 집 구조가 중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이 있고 부엌 옆에 나무문으로 방으로 출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방안에 열쇠를 두고 문을 잠그고 나오셔서 부엌에 있던 무딘 식칼로 문을 여는 걸 보게 된다. 어린 시절 내 눈엔 굉장히 재밌는 놀이로 인식이 되었고 다음 날 친구들을 불렀다.
동네 친구들을 방문 앞에 세워두고 아빠가 하던 것처럼 식칼로 잠긴 문을 열어 보이자 아이들이 꽤나 환호했다. 난 굉장히 뿌듯함을 느꼈고 며칠 뒤 동전이 털리는 사건이 터진다. 그 당시 아빠는 어린 나를 의심해보셨을 만도 한데 전혀 묻거나 내색하지 않으시고 없어진 것만 엄마에게 얘기해주셨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알게 되었다.
나도 친구들을 의심하진 않았지만 며칠 뒤 동네 친구들이 나에게 와서 그 당시 함께 놀던 친구 하나가 전부 햄버거를 사줬다며 넌 어디 갔었냐고 얘기해줬다.
근데 동전으로 내서 사장님이 세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고 했다. 그제야 대충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게 돼서 아빠에게 말했지만 아빠는 알겠다고 하시곤 우리가 조심하자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집에 동전 있는 걸 자랑하고 열쇠 없이도 문 여는 걸 알려준 나나 그 동전들로 동네 친구들에게 햄버거 사준 그 친구나 그 시절에만 할 수 있었던 엇갈린 우정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