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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제과점

계산 못하는 캐셔의 과거

by 로로 Feb 18. 2022

제과점은 평수가 작아선지 손님들로 붐비는 일은 없어 포스기없이는 빠르게 계산 못하는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너무 단기간에 마음을 놓고 있었던 탓일까.. 알바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씨가 쌀쌀해진 어느 날 출근하기가 무섭게 손님이 오더니 어느 순간 10평의 작은 가게가 사람들로 붐볐다. 손님이 말하면 내가 포장하고 계산해야 하기에 정신이 없어졌다. 급한 성격의 나는 계산 실수에 대한 염려와 조급증이 올라왔고 30대의 젊은 주부로 보이는 분이 빵을 20개 넘게 시키며 그 조급증이 폭발하여 손을 떨기 시작했다.  나도 내손을 보며 멈춰지지 않은 채 집게로 빵을 집어 종이 포장지에 담고 있었다.

손을 떨며 등 뒤의 이상한 시선을 느끼게 되어 계산대 쪽의 기다리던 손님을 보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난 그런 손님의 얼굴을 보면서도 손이 멈춰지지 않았다.  뒤에서 기다리는 손님들과 정신없어 보이는 사장님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삼십 분 정도였지만 내가 있던 시간 동안 처음으로 붐비는 가게를 겪으며 정말 포스기없이는 난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잠시 전에 손을 떨다 마주친 손님의 표정을 다시 생각하니 혼자 웃음이 터질뻔했다. 그리고 다시 가게는 원래의 분위기대로 한가해졌다.




가게가 한가해지면 늘 지난날이 떠오르기도 했고 앞으로의 재밌는 일들을 상상하곤 했다. 포스기 없이 계산 못하는 지난날에는 학창 시절 수학과의 잊지 못할 추억들이 스쳐갔다.


나는 인문고를 가려면 시험을 봐야 하는 마지막 세대였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하나가 수학 시간에 나름 억울하게 불려 나가 혼났고 선생님에 대한 복수를 하자고 제안했다. 복수는 간단했다. 중학교의 마지막 기말고사의 수학 객관식을 전부 4번으로만 체크하자는 거였다. 마지막 기말고사는 내신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할 수 있었던 일이긴 했다.


우리 넷은 그렇게 했고 결과는 나만 4점을 받았다.  다른 친구들은 주관식은 풀었고 나는 주관식도 4로 썼기에 벌어진 일이다. 거기에 객관식 답 중 4번이 정답인 것이 딱 두 문제 였던 것까지 더해져 수학 점수가 4점이 나왔다.


결국 나만 교무실에 불려 가 이 사건의 주동자가 된 듯 되었지만 선생님께서 어이없어하시며 우리의 바보짓들을 무시해주신덕에 가볍게 이야기를 듣고 나올 수 있었다.


나의 단순무식이 또 한 번 드러났던 일중 하나였다. 그리고 평소 수학을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때의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가서도 나와 수학과의 진한 추억은 계속되었다.


고등학교를 처음 입학하고 1학년 담임선생님 과목이 수학이었다. 안 그래도 수학은 두려운 과목이었는데 수업시간마다 무작위로 시키시곤 했다. 긴장성장증후군이 있던 내 짝꿍도 늘 수학 시간마다 긴장해서 화장지를 손에 쥐고 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거리 달리기를 끝마치고 점심시간을 지나 곧 수학 시간이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체력을 소모하고 식사까지 한 뒤라 좀비가 된 상태였다.  이와 중에도 선생님께서 언제 시킬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만 칠판을 보며 반짝이고 있을 뿐 나의 생각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선생님은 유난히 눈이 반짝이던 나를 눈여겨보시며 한 시간 동안 수업을 하셨고 그날 가르친 내용에 대한 문제를 적으시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가리키며 나와서 풀어보라고 하셨다.


수학 시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벌어진 일이라 방심하던 나는 더욱 당황하였고 표정은 대답을 대신했다.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던 순간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고 선생님의 황당해하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문과 생활이 시작되며 수학이 1학년 때보단 부담이 덜 갔다.  그래도 어렵긴 했지만 이과보단 비중이 작아졌기에 공부도 안 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수학도 벼락치기가 가능했지만 고등학교부터는 불가능하다는 걸 직접 깨우치고 거의 포기상태로 지내던 중 수학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에 오셔서 꽤 신나는 제안을 하셨다. 수학 문제가 나온 프린트를 20장 주시면서 여기 있는 문제와 답, 그대로 시험에 낼 테니 이것만 고대로 외워도 50점 맞는다는 얘기였다.


수학시험 당일이 다가오고 당일에 주어지는 오전 자율학습시간에 공식을 외우는 아이들, 문제를 계속 풀어보는 아이들, 사이에 나와 수학을 포기한 친구 몇몇은 문제와 정답을 쉽게 외우는 방식을 서로 알려주며 수학을 암기하고 있었다.  열심히 암기한 덕에 수학선생님께서 말하신 답만 외워도 50점은 맞는다는 말을 우리는 점수로 증명해내었다. 수학도 문과답게 암기해버렸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


 유독 숫자에 취약하고 싫은 내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살다 보니 인간관계든 사회생활에서든 계산하고 살지 못해 더욱 진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장점도 있음을 알아갔다. 계산 알바를 할 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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