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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제과점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풍선에♫

by 로로 Mar 04. 2022

아빠는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나름 본인의 주관이 명확하시고 가끔은 쉬운 일들은 주관대로 밀고 나가시는 경향이 있으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정도 을 때 선생님께서 과제를 내주셨다.  풍선을 바람 가득 불어 종이를 겉에 붙여오라고 하셨다.  알림장에 멋지게 적어가서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빠는 알림장을 보시더니 신문지에 물을 묻혀 바람 가득한 풍선 위에 붙여주시기 시작했고 알림장에 분명 풀로 붙여오라고 쓰여있던 건 무시하시고  풀로 해서 언제 다붙이고 있냐고 빠르게 붙여주셨다.

나도 항상 아빠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뭔가 더 빠르게 과제가 처리되는 걸 보고 남들보다 앞서 나간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반 친구들의 풍선을 보니 모두 단단해 보였다. 풀로 붙여왔으니 표면이 단단해져 있었다.  내풍선은 물이 마르니 친구 들것에 비하면 흐물거리는 느낌이었다.  금세 다른 친구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이상함을 직감했다.  선생님께서 책상 위에 풍선을 꺼내보라 하시더니 바늘을 나눠주셨다.  나의 불안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 같이 찔러보기를 위해 하나 둘 셋을 외쳤고 내풍선만 빵 하고 터지자 아이들도 웃음이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이때부터 아빠에 대한 신뢰가 금이 간듯하다.   



아빠도 일찍이 선생님을 그만두시고 퇴직금으로 친구와 함께 정수기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그 당시 너무 앞서가신 것도 있고 동업하던 친구가 자금을 들고 사라지신 것과 함께 아빠의 직업도 사라졌다.  그날 이후부터 집에서 날 돌보시게 됐고 엄마도 장사를 시작하시게 됐다. 아빠는 후에도 틈이 있으면 작게라도 사업을 해보시려 했고 위기의 순간마다 엄마가 모아놓은 돈으로 곧잘 넘기셨다.



아빠는 청년시절부터 자신감이 늘 넘치셨다고 했다. 특히 아빠가 농대 졸업할 즈음에 최고조에 달하셨던 것 같다.  아빠가 38년생이시니 그 당시엔 대학 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집안에서 7년 만에 얻은 장남으로 할아버지께서 엄청 귀하게 키우신 이유도 한몫했던 것 같다.  아빠는 넘치는 열정으로 그 당시 강원도 군수를 찾아가셨다고 했다.  제가  농대생인데 농촌을 부흥시켜보겠다고 자신을 믿어보라고 하셨다 한다. 믿도 끝도 없이.. 어찌 보면 어린 청년이 갑자기 찾아와 무턱대고 한 말들을 건방지게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빠를  좋게 보셨는지 화통한 게 마음에 든다고 대관령 땅을 줘볼 테니 한번 해보라 하셨다고 한다.  누구나 이십 대 시작의 열정이 현실과 부딪치며 겪는 좌절감을 겪으시며 대관령에서 떠나시고 이후 대관령은 큰 발전을 한다.



이후에도 크게 작게 사업을 해보신다고 많이 시도해보셨다. 이런 아빠가 나를 돌보 셔서인지 아님 아빠의 유전자가 나에게 있어선지 나도 꿈꾸고  나만의 생각을 하는 걸 좋아했다.  꿈꾸던 삼 년간의 시간이 참 즐거웠다.  그 꿈으로 돈을 버는 것도  시간을 버는 것도 아닌데 참 기뻤다.

그 시간들의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것과 달랐을 때 물론 전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아빠도 나도 무엇이 잘못됐던 건지 생각을 했지만 결론은 둘 다 운이 나빴을 뿐이라는 거다.

내가 모든 걸 날려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나에게 위로가 됐던 한 문장이 있다.

The best is yet to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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