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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제과점

헌책값으론 독립을 살수없다

by 로로 Mar 11. 2022

손에 일이 익지 않았을 때는 핸드폰을 잠깐 볼 여유도 없었지만 하다 보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빵 포장을 모두 해놓고  카운터에 서서   멍하니 있을 무렵 고등학교 동창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시집가기 전부터 개를 좋아했지만 결혼 후엔  더욱더 애호가가 돼서 본인이 가입한 카페에서 다른 사람이 올린 자신의 강아지가 어디 부근 근처에서 사라져서 애타게 찾고 있다는 글을 보고 찾아 나섰다고 했다.  오다 보니 내가  역 근처 제과점에서 일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내 얼굴도 볼 겸 연락했다고 했다.  가게에 잠깐 들렀다 갈 테니 부담 갖지 말라며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가게를 찾아왔다.  다행히 가게는 한가했고 잠시 얘기를 오랜만에 나누다 손님이 들어오며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떠났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잘 사는 이 친구와의 스무 살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드디어 성인이 되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던 시기.. 스무 살.. 어느 날 이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나대로 대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가게를 차린다고 요리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이 친군 지방대를 갔지만 좀 더 공부에 욕심을 내고 싶어 자퇴를 하고 재수를 준비 중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아버지와 다툼이 커져 집을 나갈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성인도 됐고 독립이 가능할 거란 착각 속에 이 친구가 가장 먼저 한일은 집에 있는 책을 모두 팔아 자금을 모으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에게 책이 너무 무거우니 헌책방까지 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였다.

나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 흔쾌히 나갔고 그 친구의 집에서 같이 책을 들고 나와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한참 달려 도착한 그 친구가 알아두었던 책방에 도착했고 우리는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책을 옮겼다.  사장님에게 책을 팔러 왔다 하니 책 한 권 한 권을 유심히 살피시고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셨다. 친구와 나는 내심 돈을 많이 받기를 기대하며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아저씨가 말한 금액은 우리가 타고 온 택시비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흐느끼며 웃었고 그 친구는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멀리서 왔다며 한 번 더 말을 붙였다.  하지만 사장님은 단호했고 결국 그 값에 받고 책들을 팔았다.  그 친구가 그 길로 집에 갔더니 아버지께서 책이 다 어디 갔냐며 또 호통을 치셨고 그 친구가 팔았다고 하니 더욱 화가 나셔서 결국 또 엄청나게 혼이 났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다시 가서 찾아오라 하셔서 며칠 뒤 그 친구는 울며 책방에 가서 책을 돌려달라 했는데 사장님이 다 팔렸다는 말에 두 번 나라 잃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갔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그 후로도 늘 독립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하고 결혼하게 되어 한 가정을 꾸리며 만족스럽게 독립을 하게 된 그 친구를 보며 모든 것이 때가 있구나라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고등학교부터 알바를 시작해봐서  대학까지  나름 다양한 알바를 해봤는데 빵집 알바도 고된 알바에 속한다. (난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막상 요리의 길은 힘든 것 같아 뒤늦게 재수를 시작했었다.) 내가 해봤던 알바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큰 식당의 서빙 알바였다. 고등학교 시절 반 친구 중 하나가 남한산성 중턱에 가면 큰 식당들이 모여있는데 거기서 이모가 식당을 운영하신다고 했다.  여름엔 일손이 부족해서 자기도 도와주느라 고생하다 왔는데 하루 일당은 꽤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그때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 몇 명이 그곳을 찾아가게 된다.

식당들을 돌며 고등학생인데 주말에 알바 안구 하시냐고 물으며 다녔고 정말 그 친구 말대로 다들 연락처를 적어두고 가라고 했다.

정말 주말쯤 되니 전화가 왔고 일요일마다 하루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와 함께 다니던 친구들이 다녀와서 다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고 한참 용돈이 많이 필요한 시기여서 인지 금세  소문이 퍼져 많은 친구들이 그 식당가에서 주말에 일을 하게 되었다. 산 중턱에 있는 곳이라 마을버스 한 대만 왕래하는데 어느 날 보니 막차에 타있는 뒤통수들이 모두 우리 학교 친구들인걸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세상 물정 모르던 그 시간들이 내게 준 재밌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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