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금식의 마지막 날은 아빠의 수술일이었다. 회사 연차를 쓰고, 새벽 기차를 타고, 대구의 모 대학병원을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 수술은 이미 시작된 후였고, 수술실 앞 텅 빈 대기실에는 엄마 혼자 앉아 있었다.
“엄마.”
“왜 왔어! 여기는 나 혼자 있어도 되는데. 회사는? 아빠 수술, 알아도 모른 척 하랬더니.”
“어떻게 안 와. 당연히 와야지.”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 든든하고 좋았는지 엄마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아침도 굶고 빈 속으로 대기하던 엄마를 인근 식당에 모셨다. 엄마가 갈비탕 한 그릇 뚝딱하는 사이, 나는 냉수로 속을 달랬다. 오늘까지 금식이다.
수술은 예상보다 2시간이 더 걸렸다. 좋은 징조 같았다. 췌장암이었던 고모는 개복했지만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로 닫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은 고모처럼 손쓸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어찌됐건 손을 쓰는 상황이라는 뜻이니까.
좀체 흐르지 않던 시간이 꾸역꾸역 밀리고 밀리더니, 이윽고 ‘수술중’ 전광판의 불이 꺼졌다.
회복실로 이동 전, 1분 남짓 짧은 접견이 허락됐다. 파랗게 질린 아빠는 눈도 뜨지 못하고 “춥다”는 말만 반복했다. 간호사는 담요로 아빠를 감싸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엄마와 나를 한 걸음 더 물러서게 했다. 엄마와 나는 아빠 몸에 손끝도 대지 못했지만, 다독임 가득한 위로와 응원의 말들을 수없이 퍼부었다. 아빠는 그렇게 회복실로 들어갔다. 엄마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의사가 나왔다. 수술복 차림의 의사였지만, 담당 교수는 아니었다. 너무 젊었다.
그래도 그는 아빠의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다.
“선생님, 저희 아빠 수술 잘 되었나요? 어떻게 됐어요?”
“네, 수술은 잘 됐습니다.”
“그럼 암은 모두 제거한 건가요?”
나는 암을 하나도 몰랐다. 장기에 붙은 암을 깨끗하게 도려내고, 잘린 장기를 봉합하고, 오장육부가 다시 제 할 일을 잘 하도록 기력을 올리면 그걸로 초기 암을 잡고, 사람을 살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암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니었다. 본거지를 잃은 암세포는 혈액을 타고 돌아다니다 엉뚱한 곳에 또 똬리를 틀고, 그게 급성으로 번져버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수술 후가 본격적인 전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제 암은 다 제거해서, 저희 아빠 괜찮은 거죠? 맞나요?”
암을 몰랐던 나는 그 젊은 의사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 수술 한 번으로 암의 마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의사는 수차례 입술을 달싹였다. 그게 아니라는 것처럼.
“… 오늘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그 후 치료에 대한 부분은 다시 말씀드릴 겁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셨잖아요? 치료가 계속 필요해요?”
“수술은… 어려운 수술이었습니다. 보이는 암을 잘 제거했어요. … 그 다음은 지켜봐야 합니다.”
담도암이 사라졌다는 말.
듣고 싶었던 말은 기어코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결코 입바른 말, 허튼소리를 내뱉지 않고.
조용히, 빠르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