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과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심호흡을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요동치던 맥박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겁 많은 내가 엄마라니! 아기가 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한숨 푹 자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요."
임신중독증으로 응급제왕절개 수술을 받던 2023년 5월 29일, 그리고 5박 6일간의 입원.
그날의습기와 온도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연이은 비로 꿉꿉한 병실에서 소변줄을 꽂은 채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있던 나날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조금만 움직여도 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던 고통스러운 시간.
최근 출산 시 무통주사와 페인부스터 겸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표되었다.
올해 7월부터 적용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저출산 국가가 맞는가?
저출산 국가에서 출산을 선택했건만 비수를 꽂다니!
현재 임신 중인 임산부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아닐까.
이에 보건복지부는 환자 본인이 원하면 겸용을 허가하는 쪽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100% 본인부담으로 80~90%였던 이전보다 오히려 비용의 부담이 증가했다.
어떤 의학적 근거가 있는지 잘 모르고 알고 싶지 않다.
다만 출산과정의 고통을 국가에서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겁이 많은 난 페인부스터와 무통주사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통증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접하고 출산 당시 무통주사와 페인부스터 병용을 원했지만 임신성고혈압 병력으로 인해 거절당했다. (무통주사의 부작용인 가려움증으로 이마저도 제대로 누릴 수 없었지만) 무통주사만으로 출산의 고통을 견뎌내야 했고 페인부스터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다만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경우 아이에게 안전한 방식으로 출산해야 하기에 (심지어는 나처럼 겁 많은 사람조차도) 의료진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통주사와 페인부스터를 겸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임산부의 최종목표는 순산이다.
순산: 산모가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아이를 낳음.
아이러니하게도 출산과정 자체가 '아무 탈 없기' 힘든 과정이기에 태아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산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출산하도록 도와야 한다. 요즈음은 자연분만의 엄청난 고통이 두려워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선택적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하려는 임산부들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나 역시 자연분만 도중 겪어내야 하는 진통이 두려워 제왕절개를 선택하려 했지만 선택할 수 있다는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찾아온 임신중독증으로 응급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자연분만이 산모와 아기에게 가장 좋대."
산모 자신의 성향은 산모가 가장 잘 안다. 아기에게 위험한지 아닌지는 의사가 판단한다.
개인적으로는 순산의 정의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산: 산모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마침내 아이를 낳음.
세상 모든 임산부가 '순산'이라는 말에 거리낌 없이 출산을 앞둔 내면의 두려움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그저 기도하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