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화<미드소마>-치유를 위한 씻김굿

그녀는 진정한 위로가 필요했다

by 윤병옥


현대의 개인주의는 기쁨도 슬픔도 오롯이 개인이 처리해야 할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혼자서 감당할 수준이 넘어섰을 때 인간은 무너진다. 자신과 타인의 경계선을 건드리지 않고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여자의 삶으로 들어가 본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니의 가족은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동생이 오랜 조울증으로 오랫동안 가족에게 영향을 미쳐와서 부모도 지쳐있고 그녀도 늘 불안한 상태이다.

동생이 불길한 이메일을 보낸 후에 연락이 닿지 않자 대니는 안절부절하며 계속 연락을 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동생과 부모가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고 모두 죽은 것이다.

가족을 모두 잃고 거의 무너질 것 같은 대니를 다독이는 사람은 그의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이다. 그들은 오래 사귀어 왔는데, 불안정한 대니가 그에게 과도하게 의지하자 친구들도 그들의 관계를 비판하고 그도 슬슬 피곤해 하지만, 자신까지 떠나면 그녀를 위로할 사람이 없는 것을 아는 그로서는 매정하게 돌아설 수가 없다. 이번 사건까지 터지면서 그는 이별할 타이밍을 놓쳤다.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은 인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인데 논문 주제를 정하느라 힘든 상태일 때 그중 한사람인 펠레가 자신의 출신 마을인 스웨덴의 헬싱크랜드라는 도시 외곽에 있는 호르가라는 마을에서 하지 즈음에 ‘미드소마’라는 축제가 열리니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이번 축제는 특별히 90년만에 치르는 9일 동안의 축제라고 하여 친구들은 민속학적인 관심을 갖는다. 친구들중 펠레만이 대니의 합류를 환영하고, 그들은 함께 호르가 마을로 떠난다. 가는 도중에 그 마을 출신 잉마르와 그가 초대한 런던 친구 커플도 만나서 인사를 한다.


북쪽 세계의 여름답게 밤이 되어도 날은 밝고 그곳의 사람들은 하얀 옷을 입고 손님들을 환영하고 꽃과 춤과 자연환경은 그들을 매혹한다. 다음날 이어진 축제의 순서는 ‘절벽’이라는 이벤트였는데 마을의 연장자인 72세의 남녀 노인이 높은 절벽에 올라가서 스스로 투신하여 죽는다. 심지어 두 번째 노인이 단번에 죽지 않자 주민이 커다란 망치로 그의 머리를 때려 목숨을 끊도록 도와주기까지 한다. 초대된 사람들은 경악하고 영국에서 온 커플은 당장 떠나겠다며 짐을 싼다.


그들은 인생을 18년 단위로 4계절로 나누고 72세가 마감의 시기라고 보고 즐겁게 떠나며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서 순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미드소마 축제를 논문 주제로 정한 조쉬와 크리스티안은 마을 원로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데 조쉬는 경전에 관심을 갖고, 크리스티안은 적은 수의 주민들끼리 어떻게 후손을 생산하는지에 관해 관심을 갖는다.

영국에서 온 커플은 떠났다고 하고, 마크는 마을의 신성한 나무에 소변을 보는 불경 행위를 저질러 분노를 산 뒤 매력적인 젊은 마을 여성이 이끄는 곳으로 같이 간 뒤 사라지고, 조쉬는 밤에 몰래 경전을 휴대폰으로 찍는 금지된 행동을 하다가 누구에겐가 공격당하고 없어진다.

마을 사람들에 의해 하얀 옷과 화관으로 장식한 대니는 환각효과가 있는 약초가 들은 음료를 마신 후 마을 여자들과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댄스를 추는데,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남는 사람이 5월의 여왕이 되는 규칙에 의해 대니가 끝까지 남게 되어 메이퀸이 된다.


한편 마을에서 18세가 되면서 섹스를 허락받은 마야는 처음부터 크리스티안에게 신호를 보내왔는데 대니가 메이퀸 행사를 하는 동안 오두막에서 마을의 나이 든 여성들과 그와의 결합을 준비한다. 환각제를 마시고 정신이 없는 크리스티안이 들어와서 둘은 결합하고 마야는 아기가 생기는게 느껴진다고 말하는데 둘을 둘러싼 나이든 여인들은 함께 황홀한 소리를 내며 지켜본다.

이상한 소리가 나는 오두막으로 가서 이 장면을 엿본 대니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 하며 뛰쳐 나오는데, 같이 있던 젊은 여자들은 대니와 함께 통곡하며 그녀의 괴로움을 나눈다.

나체로 뛰쳐 나온 크리스티앙이 숨을 곳을 찾아 뛰어다니다가 정원에 묻힌 누군가의 시체의 발을 보고, 한 창고로 들어갔을 때 거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미 떠났다고 이야기했던 커플 중 사이먼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 크리스티안에게 연기를 마시게 하고 그는 정신을 잃는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9명이 들어있는 오두막을 태워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었다. 9명은 처음에 자살한 두 노인, 영국에서 온 커플, 조쉬와 마크, 마을에서 자원한 사람 두명과, 나머지 한명은 추첨으로 당첨된 마을 사람과 크리스티안 중에 5월의 여왕이 선택한 사람이다.

대니는 남자친구의 배신에 대한 분노로 크리스티안을 제물로 선택한다.

오두막은 불태워지고 그안에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불에 타며 고통에 겨워 소리를 지를 때 마을 사람들도 같이 아파하며 소리를 지르고, 대니도 처음에는 함께 눈물을 흘리다가 서서히 환희에 찬 표정을 짓는다.



영화의 표면적인 이야기에서 펠레는 이 모든 사건의 기획자이다.

그는 어쩌면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학위를 따는 것에는 애초에 관심도 없고, 자기의 마을의 축제 의식의 제물을 찾기 위해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전공도 다른 민족이나 장소의 이질적인 문화에 거부감이 없는 인류학 전공 학생들을 타겟으로 했을 것이다. 게다가 친구의 애인까지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여자였으니 메이퀸 역할을 맡기기에 적합하였던 것이다.

그가 친구들에게는 논문을 미끼로 하고 대니에게는 불안감을 자극해서,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그들을 유인한다.

이 마을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나누는 공동체이다. 수확물을 공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감정도 완벽히 공유한다. 가족도 공유한다. 모두가 서로에게 부모이고 형제이다. 펠레가 대니를 위로하며 자신의 부모도 불에 타서 죽었다고 고백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의 부모도 제물로 태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마을의 문제는 크리스티안이 간파한대로 소수의 구성원끼리 어떻게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가이다. 근친혼의 가능성을 지적하자 마을 원로는 그것을 부인한다. 물론 그것을 추정할 수 있는 심한 기형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신성한 업무를 위해서만 그런 사람을 만든다고 하였다.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모든 것은 돌고 돈다는 순환론이다.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인간도 살다가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노인은 행복하게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는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붙인다. 경악하는 타지인들에게 영화는 늙은 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는 것이 더 나을 것이 있냐고 반문한다.

그가 설치한 덫에 걸린 이들은 마을의 종족 번식을 위한 종마 역할을 하고, 제물이 되어 태워져서 바쳐진다. 마을 사람들은 펠레의 공을 치하하며 그에게 화관을 씌운다.


대니의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그녀의 치유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가족을 모두 잃은 그녀의 마음 상태는 참혹한 수준이다. 그러나 현대는 타인이 남의 고통을 깊은 수준으로 위로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이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많이 의지하지만 그것을 절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보인다. 그녀는 고통이 몰려올 때마다 크리스티안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입을 틀어막고 운다. 따라서 펠레는 대니를 유인할 때 남자친구로서의 크리스티안의 개인적 한계와 현대 서구 문명의 한계를 이용한 것이고 결국 성공하였다.

처음 마을에 진입할 때 그들에게 환각제가 웰컴의 의미로 주어지는데 이 성분은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없애주는 물질이다. 대니는 이것을 섭취하고 자신의 손에 풀이 자라나는 환각을 보며 못 견디고 그 자리에서 도망간다. 개인의 경계를 지키려 평생 노력했던 그녀에게 이것은 구토를 유발하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메이퀸을 선발하는 춤을 추기 전에도 환각을 유발하는 약초가 들은 음료를 또 마신다. 또다시 발에서 풀이 자라는 환각을 보지만 이번에는 계속 춤을 추고 트랜스 상태에 빠진다. 그녀와 세계의 경계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들의 순환론에 입각하면, 노인들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의식에서 죽음은 그저 질서에 불과하다. 한번에 죽지못해 고통받는 노인에게 공감하여 모두 함께 울부짖고 망치로 내리쳐서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장면에서 대니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자신의 부모도 죽을 시간이 온 것 뿐이며 동생도 그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죽을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동생은 부모님 방문에 가스가 새지 않도록 밖에서 테이프로 틈을 막고 자신은 파이프로 가스를 직접 흡입하여 자살한다. )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이 마을 여자와 결합하는 장면을 보고 괴로워서 우는 대니의 고통에 마을 여자들은 완전히 대니에 공감하여 같이 오열한다. 그들 사이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문자 그대로 슬픔을 '나눈' 대니는 이제 그와 결별할 수 있게된다. 그를 오두막에 넣고 태운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에서 그를 지운다는 의미이다. 물론 투신한 두 노인이 상징하는 그녀의 부모와 동생과 그동안 그녀를 귀찮아 하던 그의 친구들도 함께 지운다.

그녀는 부모가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동생이 부모를 죽였다는 의심도 거둘 수 있게 되었으며, 주변 친구들의 수근거림도 신경 쓰지 않게 되고, 미적지근한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축제에서 화관을 쓰고 그녀는 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밝은 얼굴로 미소 짓는다.





keyword
이전 14화영화<한나>-외면해도 스며 나오는 썩은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