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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프리 가이>-예술 작품은 작가의 러브레터다

예술과 작가와의 관계

by 윤병옥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을 투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 주인공의 대사는 작가의 목소리일 때가 많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면 누가 주연을 하던지 작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이러한 명백한 경우 이외에도 미술 작품이나 심지어는 컴퓨터 게임에도 디자이너의 세계관과 개성이 들어있다.

이 영화는 게임 속 주인공을 따라가는 메인 플롯과 주제도 재미있지만, 게임 밖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예술과 작품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서브플롯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리 가이’라는 게임 속 은행 경비원인 파란 셔츠를 입은 가이는, 유저들이 게임을 할 때 그 속에 항상 존재하면서 정해진 반응만 하도록 설계된 NPC(Non Player Character)이다.

유저들은 게임에 들어가서 선글라스를 쓴 영웅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크레딧을 따서 아이템을 획득하게 되어있다.

가이는 늘 하던 대로 은행에 출근하여 은행 강도로 들어온 유저들에게 제압당해 주고, 엎드린 채로 친구 버디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몰로토프 걸'이라는 닉네임의 유저가 게임에 들어와 NPC들이 하는 판에 박힌 대사를 그들보다 미리 외워서 읊으며 지나가는데, 가이가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해서 다가와 예상 질문이 아닌 “지금 듣는 그 노래는 뭐죠?”라고 하며 걸어가니 그녀는 깜짝 놀란다.

가이가 커피숍에 들어와 늘 먹던 기본 커피가 아닌 카푸치노를 주문한다. 바리스타 여자가 당황하며 깜짝 놀라자, 농담이라며 다시 예전 커피를 주문한다.(그녀는 한 가지 커피만 만들도록 프로그램되었다.)

다음날 은행에 출근한 가이가 밖에서 어제 반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찾으려 나가려는 순간, 유저인 은행 강도가 들어와서 방해하는 바람에 제압하다가 그의 선글라스를 빼앗고 그를 쓰러지게 한다. 가이가 빼앗은 선글라스를 써보니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스크립트와 아이템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압한 영웅의 돈까지 가이의 계좌로 들어오게 되어 그는 원했던 운동화를 사게 되는데, 그것은 보통 운동화가 아니라 게임 아이템으로, 고층빌딩 꼭대기까지 점프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크레딧을 많이 따야 높은 레벨이 될 수 있는데 그러려면 강도짓이나 남을 폭행해야 하지만, 가이는 자신은 나쁜 짓은 하지 않겠다고 하며 대신 나쁜 놈들이 총을 쏠 때 그 총을 빼앗아서 다른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여 점수를 딴다. 유저들에게 가이는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초고속으로 레벨업을 하여 화제가 되고, ‘블루 셔츠 가이’라고 불리며 전 세계 어린이의 영웅이 된다. 사람들은 그가 NPC인 척하는 천재 해커라고 생각한다.

그는 다음날에는 그가 매일 입었던 셔츠가 아닌 티를 입고 나가서 자신의 이상형 ‘몰로토프 걸’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밀리와 데이트를 하는데, 아이템과 임무가 없는 지역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가이도 우연히 그녀가 좋아하는 취향과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둘 다 좋아하는 그네도 탄다. 둘은 마음이 너무 잘 통하고 호감을 느끼며 서로 키스한다.

게임 디자이너인 키스와, AI 엔진 메이커인 밀리는 ‘Life Itself’라는 상호작용하고 성장하는 캐릭터를 지켜보는 게임을 개발했지만,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앤트완이 경영하는 거대기업 ‘쓰나미’에 게임을 판다. 그러나 앤트완은 그것을 출시하지 않고 그 안의 엔진만 훔쳐서 자신의 게임 '프리가이'에 이용하여 둘을 절망에 빠트린다. 그는 전편과 전혀 다른 속편도 만들었는데 1편의 가이가 인기를 끌며 속편의 판매가 부진하자 1편을 리부트 해서 가이를 디폴트로 환원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 게임 속에는 키스가 숨긴 원작의 코드가 들어있었고, 사실 가이는 원작에서 밀리를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짝사랑남’의 변형이었고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캐릭터였다. 리셋으로 기억이 없어진 가이에게, 밀리가 몰로토프 걸이 되어 게임으로 들어간 후 키스하자 그의 기억이 돌아온다. 밀리는 가이에게 자신도 인생에서 NPC처럼 병풍으로 살았다며 매년 10억 명의 NPC가 살해당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가이는 게임 속 모든 NPC들을 모은 뒤 삶의 관객으로 살지 말고 주역이 되라고 하며 싸우자고 연설한다.

앤트완이 모든 플레이어를 삭제하여 밀리도 게임에서 쫓겨나고 키스도 해고되지만, 가이는 게임속 바다 쪽에 위치한 원작의 빌드를 찾아간다. 그리고 전 세계에 이 장면을 스트리밍 한다. 결국 위기에 몰린 앤트완이 게임의 중앙 서버를 부수기 시작하고 게임 속 가상건물과 NPC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키스는 앤트완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들이 창작한 원작 게임의 저작권이고, 프리가이 게임은 다 줄 테니 게임 빌드 중 일부만 자신들에게 주면 된다고 말하며 협상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둘이 다시 만든 게임 ‘프리 라이프’는 대성공을 거두고, 앤트완의 ‘프리가이 2’는 완전히 망하게 된다.

몰로토프 걸이 되어 게임에 다시 들어간 밀리는 가이와 작별을 하는데, 가이는 밀리를 사랑하는 그의 성향과 말을 프로그램한 사람은 게임의 밖에 있는 현실의 작가라고 말한다. 자신은 그가 보낸 러브레터일 뿐이라고... 그제야 밀리는 가이를 만든 키스의 사랑을 깨닫는다. 되돌아보면 그는 언제나 그녀의 유별난 취향을 알고 맞춰주었었다. 그녀는 키스의 집으로 달려가고 둘은 포옹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먼저 영화에서 게임 속 스토리의 메시지를 읽을 필요가 있다. 영웅을 받쳐주는 병풍 역할만 하는 인생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실제 인생에서의 병풍 역할이 짜증 나서 게임에 들어와 영웅 노릇을 하는 것이기는 하다.) 게임의 세팅처럼, 인생에서도 사람들은 주어진 역할과 대사를 앵무새처럼 외우며 중요인물의 들러리만 하다가 하루하루가 가고 인생을 보낸다. 그러나 가이가 셔츠에서 티로 옷을 바꿔 입고, 예상과는 다른 대사를 하고, 이상형을 발견하면 사랑하는 것처럼, 인생은 반응하고 변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게임속 바리스타는 가이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그날부터 카푸치노를 만드는 연습을 해서 성공한다. 그리고 다양한 메뉴의 커피를 만드는 캐릭터로 성장한다. 미녀는 예전처럼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맹목적으로 남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역할과 가부장제 비판’이라는 책을 쓴 지적인 캐릭터가 된다. 가이는 나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대중들에게, 각성하고 싸우라고 연설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한다.

예술과 작가의 관계를 보자면, 모든 작가는 작품에 자신의 인장을 새긴다. 소설이나 영화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등장인물을 통해 할 수도 있고 시각예술처럼 자신만의 개성대로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다.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예술가를 이해한다. 모든 작품 속에는 작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키스는 밀리를 사랑하지만 소심하여 고백하지 못한다. 내향적인 사람이 늘 그렇듯, 그는 실제로는 말하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을 자신의 작품(게임) 속 주인공에게 투사한다. 짝사랑남의 이상형을 만들때 밀리를 모델로 해서 만들었으니 게임 속 주인공 가이가 몰로토프 걸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이 일종의 러브레터는 상대방에게 전달이 될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안 될 수도 있다. 감상자가 예민하지 못하다면 불행하게도 끝까지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밀리는 관객들은 다 아는데도, 키스가 매번 자신에게 꼭 맞는 비율의 커피를 사다 주고, 게임 속에서 가이가 자신처럼 특이한 버블검 맛의 아이스크림을 좋아해도 그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영화 속에서 예쁜 여자들은 둔감해도 다 용서받는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관객들에게는, 밀리가 늦게라도 그의 사랑을 깨달아서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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