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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의 미로>-가엾은 소녀의 마지막 출구

패밀리 로맨스 판타지

by 윤병옥


아이는 태어나서 얼마간 엄마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지와 보호를 받고 자란다. 엄마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 때문에 엄마와 자신을 구분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런 천국은 오래가지 않으며 엄마는 아이가 혼자 앞가림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기도 하고 야단을 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은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시기에 아이는 엄마의 변심에 절망하여 자신의 친부모는 따로 있다고 상상하게 된다. 원래 자신은 왕족 혹은 귀족의 딸인데 사정이 있어 이 집에 버려져서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상상을 심리학에서는 ‘패밀리 로맨스’라고 한다.

소녀 오필리어에게는 엄마가 유일한 보호자인데 엄마에게는 딸이 전부가 아니다. 그녀는 재혼하고 임신하여 남편이 있는 곳으로 온다. 소녀는 버림받은 마음을 환상으로 채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페인의 긴 내전으로 사람들이 서로 불신하고 빈곤한 시절, 아빠는 일찍 죽고 한없이 허약한 엄마를 둔 한 소녀 오필리어가 있다. 엄마가 재혼후 동생을 임신해서 정부군 장교인 새아빠가 있는 곳으로 함께 간다. 냉정하고 의붓딸에게는 일말의 정도 없는 군인 새아빠와, 병약하고 유산기가 있어 누워만 있는 엄마와, 상관에게 무조건 복종만 하는 무력한 부하들과, 산에 숨어있는 레지스탕스와 내통하며 그들을 돕는 가정부에 둘러싸여 소녀는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소녀가 숨을 쉴 수 있는 순간은 동화책을 읽을 때뿐이다.

불안한 오필리어가 건물 밖으로 나가서 숲을 탐색하면서 그녀의 판타지가 시작된다. 환상은 현실보다 생생하게 소녀의 삶이 된다. 그녀는 우연히 방까지 따라 들어온 곤충에게도 요정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숲으로 산책을 나가면서도 곤충 요정이 자기를 인도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새아빠와 엄마와 태어날 동생이 주인공이지만, 환상속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그녀는 지하 왕국의 왕과 왕비의 공주이다. 숲속의 그녀 앞에 지하 왕국의 왕과 왕비의 부하인 요정 판이 나타난다. (숲속 고목의 모양과 판의 머리 모양은 아주 비슷하다.)

미로를 지나 다시 공주 신분으로 지하 왕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요정 판은 오필리어가 완수해야 할 세 가지 과업을 제시한다.

첫째, 나무를 살리기 위해 뿌리를 해치는 나무속의 거대한 두꺼비를 죽이고 삼킨 뱃속의 열쇠를 가져와야 한다.

둘째, 판이 준 마법 분필로 그녀의 방 벽에 문을 그리고 들어가서 첫 번째 과업에서 찾은 열쇠로 벽장의 문을 열고 칼을 가져와야 한다. 그때 거기에 차려진 산해진미의 잔치상에서 맛있는 과일과 음식을 참고 먹지 말아야 한다. 먹게 되면 손에 눈이 달린 괴물의 공격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 칼로 찔러서 낸 순수한 피의 희생이 필요하다.

첫번째 과업은 끈적하고 미끄러운 거대 두꺼비의 역겨운 침과 토사물을 참아내며 대적할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성공해서 열쇠를 얻었다. (숲을 산책할 때 큰 나무의 뿌리쪽의 구멍을 발견하고 그 안을 살펴보다가 점액질로 뒤덮인 두꺼비를 보았을 것이다.)

두번째에서는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오필리어가 칼은 가져오지만 과일을 참지 못하고 먹는 바람에 곤충 요정들이 괴물에게 잡아먹힌다.(음식이 부족한 전쟁 시절,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차려놓은 테이블에서 마음껏 먹는 즐거운 상상과 죄책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지막 단계에서 동생을 안고 도망온 소녀에게, 판이 순수한 ‘희생’이 필요하다며 아기의 피를 요구하며 칼로 찌르려 한다. 오필리어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피로 희생의 의식을 치른다.(아기를 빼앗으려는 새아빠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쓰러진 소녀에게 지하 왕국으로 가는 계단이 열리며 황금색 공주 옷을 입은 오필리어는 환하게 웃으며 왕국으로 들어간다. 아버지인 왕은 그녀의 행위가 자기 자신을 바친 순수한 희생이라고 칭찬하며 공주를 환영한다.(땅에 쓰러져서 미소를 지으며 죽는다.)




먼저, 오필리어의 심리를 들여다 보자.

오필리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성스러운 소녀가 아니다. 먹음직한 과일앞에서 참지 못하고 일단 먹고 보는 그나이에 맞는 보통 소녀일 뿐이다.

그러나 너무나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없는 소녀는 환상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 그녀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상상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하는 엄마와 뱃속의 아기를 살리기 위해 무력한 그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나무의 생장을 해치는 두꺼비를 엄마를 해치는 새아빠라고 생각하고 대적하고, 아기모양의 나무 뿌리를 우유에 담그고 자신의 피를 떨어뜨리고 기도해서 살린다면 엄마도 아기도 살아날 것이라는 환상에서 위안을 받을 뿐이다.(침대밑에 숨겼던 뿌리를 들켜서 빼앗기고 난로속으로 던져지고 타버렸을 때 엄마의 상태는 우연히 악화되지만 오필리어는 뿌리를 보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냥팔이 소녀가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성냥을 한 개피씩 켰을 때마다 떠올렸던 환상의 장면들로 삶의 마지막을 버텼던 것처럼, 오필리어도 힘든 현실을 버티려면 자기를 지켜줄 환상 속의 지하 왕국과 그곳의 왕과 왕비인 친부모님과 부하 요정 판과 자신이 수행할 과업이 필요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실은 환상과 다르다.

결국 성냥팔이 소녀도 오필리어도, 죽어서야 별이 되고 공주가 되었다.

다음, 소녀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보자.

아빠도 잃고 엄마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소녀 오필리어는 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스페인 주민의 메타포이다.

또한 심신이 병약하고 파시스트 군인의 아기를 낳은 후 죽게 되는 엄마는 유린당한 스페인의 땅을 의미한다.

일찍 죽어서 모녀를 비참한 상태에 빠뜨리는 친아빠는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시스템이며, 포악한 새아빠는 민중을 억압하는 파시즘 세력이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내전이 끝난 스페인의 미래이다.

절망한 소녀가 초인적인 용기를 내서 미래를 의미하는 동생에게는 작은 상처 하나도 내지 않겠다고 외치며 자기를 희생한다. 그녀의 희생으로 살아남게 된 아기는 잘 자랄 것이다.

보통 사람인 주민들과 레지스탕스들도 자신들을 희생하고 나름의 과업을 수행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 민병대는 파시즘을 상징하는 대위와 군인들에게 목숨을 걸고 대적하며 싸우고, 그들에게 약을 공급해주던 의사는 죽임을 당하고, 대위의 살림을 맡으며 레지스탕스에게 물자를 빼돌린 가정부는 민병대와 오필리어를 보살피며 엄마 역할을 한다.

오필리어가 희생으로 아기를 살린 것처럼, 이들의 희생으로 내전은 끝나고 스페인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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