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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y 13. 2024

엄마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아들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아는 사람

     

나는 3남 1녀 중 막내딸로 자랐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오빠들 틈에서 자라서 마땅한 여성 롤모델도 없었고, 대학 다닐 때도 화장은커녕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만 오래 말려도 오빠들에게 외모에만 신경 쓰면 안된다는 훈계를 들었다.

남편의 형제 관계도 3남 1녀이다. 그도 역시 오빠들 못지않게 무뚝뚝하다. 그러던 나는 자식도 아들 형제만 둘을 갖게 되었다. 개구쟁이 아들들에게 치어서 치마는 입어보지도 못했다. 물론 평생 좋아하고 잘 어울리는 옷은 청바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안 입는 것과 못 입는 것은 차이가 있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이 여자 자매가 있는 사람이다. 그다음으로 딸이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다.

    

아들이 결혼을 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며느리가 들어왔다는 말이다.

나의 며느리는 참으로 순수하고 마음이 예쁜 여성이다. 생각 같아서는 자주 만나서 커피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데리고 다니며 예쁜 액세서리도 사주고 싶다. 그러나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끝없이 되뇌며, 표현하고 싶은 마음의 반도 안 내보인다. 내가 지난 결혼 생활에서 부담이 되었던 종류의 일은 며느리에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며느리가 들어온 후에 집안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아들들은 열 개를 말하면 다섯 개쯤 알아들었는데 며느리는 한 개만 말해도 열 개를 다 아는 기적을 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맞은 어버이날, 가족이 다 모였을 때 큰아들이 사 온 작은 꽃바구니, 작은 아들이 사 온 작은 화분, 그리고 며느리가 사 온 예쁜 꽃바구니까지 합쳐 꽃이 3개나 되었다. 이렇게 된 사정은, 며느리가 퇴근하기 전 시간이 있었던 남편에게 내일 가져갈 꽃을 사놓으라고 부탁했는데 아들이 너무 평범하고 작은 화분을 산 것을 며느리가 퇴근 후 보면서 시작된다.

초라한 꽃을 샀다고 하는 며느리에게 아들은 “우리 엄마는 비싼 꽃 안 좋아해”라고 말했고, 이에 반해 며느리는 “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어”라고 한 것이다. 이어서 아들이 “우리 엄마는 내가 30년 가까이 봐서 제일 잘 알아. 소박한 화분을 더 좋아해.”라고 했고, 며느리는 “내가 30년 가까이 여성으로 살아봐서 더 잘 알아”라고 말하며 다시 꽃집에 가서 꽃바구니를 맞춘 것이다.


나는 분수에 맞지 않게 자주 꽃다발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나 아들들처럼 꽃 보기를 돌 같이 하지는 않는다. 나도 1년에 한 번쯤 특별한 날에 예쁜 꽃다발을 받아 꽃병에 꽂고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이 집에 와서 어느 쪽 말이 맞냐고 물었을 때 당연히 며느리 쪽의 승리였다.

며느리는 꽃다발도 대충 사지 않고 나의 취향을 눈치채고 정말 좋아하는 색의 꽃을 선택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아무튼 덕분에 나도 꽃다발을 좋아한다는 것을 모두 알게되니 이제는 꽃다발을 자주 선물 받게 되었다. 어떤 때는 한꺼번에 많이 받아서 한 번에 한 개씩 번갈아 가며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지난 에피소드를 꺼낸 것은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남편이나 아들이라도 나와 성이 다르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이고, 나에게는 내가 사랑하고 나와 평생을 같이 산 남편과 아들도 모르는 여성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가끔씩 모르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도 공감하는 것은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들 내외가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도 며느리 쪽 이야기가 공감이 갈 때가 많다.

물론 거꾸로,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남성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심리학을 오랫동안 공부했고 주변 가족이나 동창들도 남자가 많은 편이라 좀 더 남성의 마음을 많이 들여다보았다고 자부하지만 내가 가진 성을 초월해서 남성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평생 여성 가족을 원했던 나에게 예쁜 며느리가 와주었다. 딸 같은 며느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서로 같은 여성으로 공감하고, 그 뒤 오랜 신뢰의 시간이 쌓이면 고부가 혈연보다 가까운 가족으로 느껴질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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