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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게 된걸 그때 알았더라면

by 해이나

둘째가 어느 날부터 아대를 차기 시작했다.

아대 안에 피부를 보여주지 않았다.


정신과 검진일. 의사 선생님께는 꼭 보여드리자고 이야기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먼저 진료실에 들어가 그동안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입원치료가 필요한지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입원치료가 가능한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것도 좋겠다고 하셨다.


이후 아이가 진료실에 들어갔다. 잠시 후, 엄마도 들어오라는 호출이 왔다.

자해가 심하고 피가 지금도 나고 있는데 몇 군데는 긁어내고 봉합해야 할 듯하니 응급실을 가라고 하셨다.


둘째를 데리고 응급실을 갔다. 하지만 중환자가 너무 많아 봉합수술도, 정신과 입원도 안된다고 하셨다. 외래를 잡고 의사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그때 입원이 가능하다고 하신다.


다시 둘째를 데리고 다른 병원 응급실을 갔다. 보시더니 긁어내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냥은 봉합을 할 수 없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둘째와 함께 다시 병원에 갔다.

상처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아빠를 보며 둘째는 울지 말라고 괜찮다고 위로를 한다.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한다.


둘째가 처치실에 들어가고 나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밤새 울어서 눈물이 마른 줄 알았는데 쉬지 않고 나온다.


하루 종일 하는 핸드폰의 SNS와 게임이 악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서 압수하겠다고 하니 크게 분노한다.


엄마 아빠는 내 말을 안 들어주니, 나도 엄마 아빠 말을 듣지 않겠다면서 약도 안 먹는다고 한다. SNS에서 연락하는 이름모를 낯선 이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어서 연락을 하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에는 뛰어내려 죽고 싶다고 하여 결국 핸드폰을 주게 되었다.


암담하다.

핸드폰을 주는 것도, 안주는 것도 불안하다.


내일 다시 병원진료를 보고 입원을 상의하고자 하는데, 둘째가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행복하게 키웠다면.


입시에 상관없이 키웠다면.


그냥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만으로 만족했다면.


이제 와서 하는 후회이다.


아이가 잘해서. 모범생이어서. 뛰어나서.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남편의 과거를 기준으로 인생의 플랜을 짜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늘 함께 대화하고 웃고 떠들어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한다 수시로 말하고 늘 안아주고 둘째가 늘 웃고 다녀서 내가 좋은 부모인 줄 알았다.


모든 것을 반성하고, 어리석음을 인정한다.


다만 이제라도 길을 잘 찾을 수 있기를. 이제라도 돌이킬 수 있기를.


날마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구하며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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