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웃음
간소하게 차린 차례상으로 명절맞이가 한결 편하게 지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점심때가 되어서 보고 싶었던 조카도 여유롭게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신랑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게 이 년이 조금 넘어가고 둘이 가더니 셋이 되어 한국에 잠시 다니러 왔습니다. 조카는 언니의 딸이자 저에게도 애교 넘치는 사랑스러운 조카인지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조카사위의 학업으로 몇 년을 더 타국에서 보내게 된 조카를 보니 반가운 마음 따라 뭉클한 마음이 더해지더군요. 유모차엔 이제 갓 오 개월이 된 순둥이가 낯가림도 없이 방글방글 어찌나 잘 웃던지 다들 헤어지고 돌아서니 눈웃음치며 웃던 아기의 순한 얼굴이 자꾸 떠오릅니다. 대학교 이 학년 때 만나 긴 연예 끝에 결혼한 조카 내외의 다정한 모습도 천생연분이 따로 없구나 싶었습니다. 둘의 모습이 어찌 그리 닮았는지 오누이같이 다정했습니다.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시댁을 간 큰 조카를 제외하고 셋째 조카까지 언니네 가족과 시간을 가지며 다 큰 두 집안의 아이들을 보며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렀구나.’ 싶더군요.
저는 대학교 학업을 끝마치고 이년 지난 뒤 엄마의 권유로 얼떨결에 생각지도 않았던 인천에서 언니랑 미술학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부산 토박이로 살던 저로서는 집을 떠나는 게 조금은 혼란스러웠지만, 언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때 큰 조카는 세 살, 둘째 조카는 백일이 됐을 즈음이었죠. 둘 다 여자아이로 무척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 두 조카를 매일 본다는 것 또한 무척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옆에서 두 조카가 커가는 걸 지금까지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겠죠.
그때 유독 방실방실 잘 웃던 둘째 조카가 지금은 자기를 꼭 닮은 순둥이 아기를 안고 있는 게 새삼스럽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휴대전화로만 보던 그런 기쁨과는 아주 다른 생동감이 있었습니다. 그건 행복이란 단어였습니다. 두 명에서 세 명이 된 조카의 행복한 가족의 틀을 보며 큰 웃음이 자꾸 새어 나오더군요.
처음 순둥이가 태어나고 멀리서 보내온 아기의 사진을 보며 워낙 가녀린 몸을 한 조카가 튼실한 아기를 출산하다니 걱정스러운 맘 뒤로 더 큰 감회가 밀려왔었죠. 그때 아기의 모습은 아기곰처럼 순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조그만 순둥이를 생각하며 문득 떠오른 것들을 스케치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사이즈의 캔버스에 행복을 담은 그림을 작업해 몇 가지 선물과 조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안 그래도 아기방에 그림 하나를 걸어 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모 너무 고마워!”
생글생글 밝은 웃음이 이쁜 조카의 말에 더해 감사해하는 조카사위의 환한 미소까지 보노라니 저도 크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순둥이도 덩달아 방글방글 웃는 게 어쩜 그렇게 사랑스러운지.
‘행복과 꿈을 향한 행복한 여행’
그림을 그리는 내내 정성을 담아 행복을 담았습니다. 행복이 오롯이 순둥이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사랑스러운 순둥아! 꿈과 행복이 담긴 작은 그림이 너의 앞날을 밝혀주는 환한 등대처럼 언제나 지켜주길 이모할머니는 바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