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카드에서 얻은 내면의 답
며칠 전 운전을 하면서 신호에 멈추어 섰다. 그 옆에는 버스정거장이 있었는데 여학생이 작은 손거울을 들고 얼굴을 살펴보고 있다.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눈을 찡긋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표정을 지어보인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거울을 보면서 자기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듯한 여학생의 모습이 귀여웠다. 때로는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해보이기도 할 것이며, 어느 순간에는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하고 흐뭇해할 수도 있다. 거울이 없다면 아마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보는 행위는 철저히 무언가를 투과해야만 가능해진다. 거울 혹은 거울이 될 만한 어떤 무언가.
어린 아이가 자의식이 생길 무렵, 생후 1년 정도 되면 자기 얼굴을 보면서 까르르 웃고 좋아한다. 거울 속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존재를 처음에는 자신으로 인지하지 못하지만, 점차 자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눈, 코, 입, 귀를 만지면서 거울로 자신을 한참 바라본다. 거울 속의 자신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은 무엇으로 비추어 볼 수 있을까. 타로카드를 통해 내 마음을 조금씩 비춰볼 수는 없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 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경이롭고 은밀하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이 있다. 죽음과 꿈, 무의식 같은 영역은 접근하기 힘든 영역이다. 그럴 때 타로카드 한 장은 생각보다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타로 상담을 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무슨 답을 줄 수 있을까. 내담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열심히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밖에 없다. 각자의 인생살이는 저마다의 무거움이 있다. 상담을 한다고 풀릴 만한 문제는 아니지만 답답한 상황에서 누구라도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누구나 존재한다. 답답하다는 것은 앞날이 보이지 않아서이다. 명확한 결말이 이미 나 있는 영화처럼 정해진 것이 인생이라면 답답해하지 않을 테지.
오늘은 상담실을 찾은 내담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별 것 아닌 일일지 모르겠지만, 과연 남편이 우리 아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일할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인데, 10년 20년 뒤를 어떻게 내다볼까. 아마 이런 질문 뒤에는 안심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괜찮아요’라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별 문제 없이 잘 살 거에요’ 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 말을 듣고 싶어서 타로 상담사를 찾는다. 손거울을 갖고 요리 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던 여학생처럼, ‘꽤 괜찮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서이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가 ‘나는 어떻게 나이들고 싶은가’ 혹은 ‘노후에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이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인생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같은 것이리라. 과연 나이가 들어가면서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을지.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 게 가장 좋을지 고민하게 된다. ‘나이듦’ 이라는 주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질문거리다.
“나는 어떻게 나이들고 싶은가?” 이러한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나도 알지 못하는 내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거울로서의 타로카드. 타로카드는 매우 정직하고 깨끗한 거울이 되어준다. 나를 환히 비추어 주는 마음의 거울이 된다. ‘나’는 ‘나’의 가장 좋은 대화의 친구가 되어 준다. 타로카드라는 거울을 들고 있는 친구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세 장의 카드를 뽑았다. 보통 1장, 2장, 3장 혹은 그 이상. 여러 장을 뽑을 수도 있는데 다양한 해석을 위하여 세 장을 뽑아보았다.
17번 별
0번 바보
1번 마법사
왠지 별은 닿을 수 없는 꿈 같은 느낌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스타’ 라는 말을 하듯, 별은 가질 수 없는 꿈을 현실에서 이룬 듯한 이미지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을 보면 운도 좋았을 테지만 엄청난 노력 끝에 얻어진 결과일 때가 많다. 특히 김연아, 박지성 같은 스포츠 스타의 경우 타고난 재능과 함께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연습의 결과다. 우리는 별과 같은 스타를 보면서 가슴 설레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을 수 있다.
첫 번째 펼친 별 카드를 보니 나이 들면서도 꿈을 잊지 않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별카드에 등장하는 여인은 알몸을 한 채 물병을 들고 있다. 한 손에는 든 물병으로는 샘물을 긷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대지에 물을 붓는다. 별카드를 바라본 순간 가슴이 떨린 이유는 뭘까.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 끊임없이 이상을 갖고 살아간다는 뜻 아닐까. 그리고 그 꿈을 위해 헛수고라 할지라도 물병의 물을 붓는 행위를 계속해나가는 해 나갈 것만 같다.
두 번째카드는 0번 바보카드.
0과 바보. 아는 게 없고 가진 게 없고 계획도 없다는 뜻. 이 세상은 많이 갖고, 많이 아는 자가 움직이는 것만 같다. 바보 같은 사람이 성공할리 없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람들은 욕망대로 살아간다. 바보는 어쩌면 목적없이 바람따라 자유롭게 흘러가는 인생이다. 발길닿는 곳따라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생.
바보카드를 볼 때면 2018년 한 달 동안 아들 재혁이와 떠났던 몽골 여행이 기억난다. 한 달 동안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마음의 끌림대로 움직였다. 뭔가 성취해야 할 목표도 없었고, 여행에 대한 하루 하루의 계획도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과 사막을 누비는 여행을 했다. 돌아다니는 바보처럼 살았던 한 달의 시간은 내 안의 행복한 시간으로 저장되어 있다. 통장 잔고는 텅텅 비었고, 다음 달 해야 할 일도 알 수 없었던 그 때. 알 수 없는 끌림으로 떠났던 몽골 여행을 통해 배운 것들이 지금도 나를 움직이는 동기가 된다. 각오나 책임감, 대단한 결심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그저 끌림대로 어떤 일이든 시도해보면 될 때가 많았다. 여행자체가 그러했고, 이후 <바람의 끝에서 마주보다> 는 책이 출간된 것도 그러했다.
0번 바보처럼 나이들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떠날 수 있는 가벼운 마음을 항상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 소유하지 않아도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누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 번째 카드는 1번 마법사다.
다재다능하고 재주가 좋고 뭐든지 만들어내는 마법사 카드는 나의 탄생카드이기도 하다. 가진 것 없어도 내 안의 재료를 갖고 요리를 해 나간다. 내 존재로 의미가 있음을 일깨우는 카드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인 나는 보이지 않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마법사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뜻한다.
마법사는 또한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쇼’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짜잔!’ 하고 뭔가를 보여준다. 누군가를 사로잡는 마법같은 일을 구상한다. 어렴풋이 생각한 것은 나이들어도 창조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싶다는 것이다. 꼭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삶이 아니다. 예술가라는 직업인으로서 사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예술이면 좋겠다.
‘너는 어떻게 나이들고 싶니?’ 라고 물었을 때 꼭 내 마음을 엿본 듯이 대답해 준 타로카드 덕에 조금은 위안이 된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내 마음이 드러난 것 같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물질적으로 편안한 삶만 원하는 게 아니었다. 내 일을 즐겁고 가치있게 만들면서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시작하는 사람. 원대한 야망가는 아니지만, 가벼운 소유로도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이 나란 존재다.
며칠 전 남동생은 “비트코인 시작했는데, 같이 해보자. 이거 요즘 엄청 뜬대” 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며칠 사이에 얻은 수익을 자랑했다. 돈의 세계에서 어떻게든 빨리 수익을 내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돈이 몰려드는 곳을 따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한다. 경매,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까지. 돈을 좇으면서 불나방들이 불을 보고 모여들 듯이 사는 모습이 안타깝다. 물론 나는 투자라고 할 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 돈 자체에 대한 욕망보다는 재미로 시작한 일이 좋은 결과를 얻을 때가 많다. 살림살이가 크게 늘지 않고, 노후 걱정은 항상 존재한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투자하거나 돈 자체를 벌기 위한 계획이 없다.
별, 바보, 마법사 세 장의 카드가 왠지 희망을 주는 듯하다. 이렇게 나이들어도 괜찮아. 사는 거 별 거 아니야. 욕심내지 않아도 그저 네가 원하는 일을 따라가다보면 언젠가는 너만의 별을 찾을 거야.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