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my life
시골에서 시골스럽게 살아보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도시의 편리함과 익숙함은 높은 인구밀도의 숨 막힘과 여유 없는 일상으로 힘들었고,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몸살처럼 시골앓이가 되어 점점 심해졌다. 시골에 가면 그냥 다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시골에 오니 정말 괜찮아졌다. 집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 흙마당, 시래기가 걸린 정자, 계절마다 주는 텃밭의 풍성함과 자연이 주는 평화가 몸과 마음의 안식을 주었다.
*명절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챙겨야 했던 명절은 즐거움도 있었지만 버거움으로 힘든 시간인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이 독립하게 되면서 시끌벅적한 친지 모임은 줄어들었고 지금은 내가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내가 가야 했던 명절보다 시골집에서 아이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지고,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이 남편과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 되었다.
아이들은 기차를 타고 오는 시골집의 명절 음식이 아파트와 다르다고 좋아한다. 눈 덥힌 시골마당에서 구워 먹는 숯불 바비큐, 방앗간에서 뽑아온 가래떡, 빈대떡과 집만두를 정성껏 준비한다. 눈 내린 어느 설날 아침, 마당의 새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밤새 내린 눈을 큰길까지 치우고, 엄마가 차려주는 집 밥을 먹고 시골마을을 함께 산책한 시간은 세월이 흘러도 가끔은 생각나는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산책
아이들이 돌아가고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부부가 함께 걷는 산책이 조용하다. 어떤 이는 시골 산책이 도시 산책만큼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고 밤에도 다닐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도 하지만, 나는 복잡한 도로와 매연과 부딪히는 사람이 없는 이곳이 너무 좋다. 간혹 한강변을 산책해도 자전거와 사람을 피해 다녀야 했던 일상을 생각하면 시골 산책은 평화와 평안이다. 복잡한 도시에서 살다 보니 사람 없는 곳의 고요를 그리워했고 조용한 자연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싫어서 사람 없는 곳이 좋은 게 아니라, 그 치열함이 싫었었나 보다. 이제는 시골에서 내 맘대로 시골스럽게 천천히 살아간다.
*그리고 또 겨울
흘러가는 시간이 사진처럼 눈에 담기는 시골에서 계절마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얀 눈이 어느새 사라지면, 파란 싹과 예쁜 꽃의 액자가 창문에 걸리고 뜨거운 햇살에도 시원한 초록이 텃밭과 마당에 가득하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이 식탁에 가득한 여름이 지나면 뒷산의 단풍이 가을을 알려주고 마지막 텃밭 수확으로 내년을 준비한다. 그렇게 겨울이 또 오고, 눈 덥힌 시골의 하얀 세상에서 손과 발과 마음도 한숨 쉬어 간다.
이제는 그렇게 흐르는 세월의 끝이 두렵기는 해도 아쉽지는 않을 것 같다. 시골에 살면 그냥 시골스러워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생활의 템포가 느려지고, 생각이 여유로워지고, 만들어 먹는 음식이 많아지고, 좀 더 부지런해지고, 걱정과 염려가 줄어들고, 창밖을 보면 마음이 평화롭다.
이렇듯 시골스럽게 그냥저냥 살다 보니, 게으른 내게도 '공짜 행복'을 툭 하고 던져주는 시골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