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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글씨 Sep 22. 2024

두 번째 : 혼자가 되어버린 엄마, 가장 숭고한 선택

엄마가 되어버린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슬픈 선택을 했다.



 일찍 가정을 꾸린 엄마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우리 집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 균열의 끝은 결국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여덟 살, 동생의 나이는 고작 다섯 살에 불과했을 때였다. 엄마 역시 서른을 겨우 넘긴 어린 나이에 나와 동생을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엄했고, 여자에게 교육은 사치라며 공부를 잘했던 엄마의 날개를 꺾으려고도 했던 구시대적인 생각을 가진 분이라고 하셨다. 엄마는 그래서 할아버지를 많이 미워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그늘막이 되어줄 테니 함께 살아가보자고. 비록 자식들에게 훌륭한 아버지,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을지언정 벼랑 끝에 내몰린 자식을 외면하는 비정한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더 이상 갈 곳도 물러날 곳도 없었던 엄마는 우리를 어떻게든 먹여 살리기 위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골로 향했다.


 혼자가 되어버린 엄마는 어렸던 내가 보기에도 무언가 달라 보였다. 할아버지를 따라가게 된 곳은 엄마가 어린 시절부터 쭉 자라왔던 작은 시골 동네였다. 엄마는 평소처럼 카메라로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뒷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어린 시절의 엄마가 자라온 장소를 소개하고 알려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따금씩 보이던 엄마의 슬픈 표정이, 축 처진 어깨가 어렸던 내 눈에도 밟히곤 했다.


 엄마는 가끔 우리를 재우고 혼자 술을 마시거나 훌쩍이며 감정을 추스르곤 했다. 포근한 이불 위로 토닥여주는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까무룩 잠에 들었다가도 옆에서 느껴져야 할 엄마의 냄새가 나지 않아 눈을 비비고 뒤척거리다 보면, 문밖에선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할머니의 짜증 섞인 잔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다시 이불을 덮고 자는 척을 하곤 했다.


 엄마의 방황은 길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기대어 살 수 없었기에 엄마는 인근에 있는 컵 공장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그 당시, 여자 혼자 아이 둘을 키우기에는 더없이 각박하고 힘든 세상이었다. 한부모 가정이 받을 수 있는 지원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그나마 존재했을 지원 정책 등을 알려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빠는 약속했던 양육비를 단 한 번도 지급하지 않았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엄마는 혼자만의 힘으로 나와 동생을 키워내야 했기에 야근과 특근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자기 자신을 버리고 ‘엄마’로서만 악착같이 살아가길 택했다. 오로지 나와 동생만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도 슬픈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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