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삶이었다. 예쁘게 집을 꾸밀 수 없었고, 화분을 놓을 수도 없었다. 관절이 좋지 않은 폴드의 특성을 고려해 온 집안에 매트를 깔아야 했고, 그 위에는 미끄럼방지 러그도 깔아야 했다. 곳곳에는 육아용품처럼 캣타워, 숨숨집, 방석, 스크래쳐 등과 같은 고양이 용품들이 줄을 지었고 화장실 모래로 인해 사막화가 생겨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기를 돌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돌돌이를 방마다 두고 틈이 날 때마다 고양이 털을 제거해줘야 하고, 고양이 몸에 있는 죽은 털을 제거해 주기 위해 빗질도 매일 해주어야 한다. 또 조그마한 녀석이 어찌나 먹을 걸 좋아하는지, 사료와 캔은 물론이고 간식도 잘 챙겨줘야 하며 필요한 영양제도 꾸준히 먹여야 했다. 발톱 관리도 주기적으로 해주어야 했고, 양치도 매일 꾸준히 시켜주어야 했다. 이게 끝일 거라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다. 못해도 하루에 2번씩 화장실을 치워줘야 하고, 주기적으로 화장실 물청소와 모래 전체 갈이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루에 1시간씩은 꼬박꼬박 사냥놀이를 해주어야 한다. 정말 말 그대로 내가 아닌 ‘집사’ 그 자체로 사는 삶이었다.
원래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청년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내 개인 시간을 가지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지향했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한 이후부터 내 삶은 180도 달라지게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그 삶에 익숙해져 지난날의 내 모습이 희미해질 정도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저녁이 있는 삶이란 집에 도착하면 꼬리를 바짝 세워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는 망고에게 ‘엄마 왔다.’하고 말하는 삶, 씻고 나와 망고의 물그릇을 설거지해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망고가 기다리는 맛있는 저녁밥을 준비해 주는 삶, 망고의 눈과 입가를 닦아주고 영양제를 먹이고 양치를 시켜준 후 간식을 챙겨주는 삶, 망고와 함께 집안을 돌아다니며 다이내믹한 사냥놀이를 시켜주는 삶. 이게 요즘 나의 저녁 있는 삶이었다.
가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취미생활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내 시간과 현재의 내 시간 중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주저 없이 현재의 삶을 택할 것이다. 물론 한 생명을 반려하는 일이 늘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힘들고 또 내 몸이 아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을 때에도 한결같은 케어를 해주어야 했고,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또한 밤늦게까지 노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남집사와 번갈아가며 케어를 진행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주된 케어는 내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개인 일상에 제한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행복할 수 있는 건 이 작은 생명체의 따뜻한 체온과 쿵쿵 일정하게 뛰는 심박수, 그리고 고르게 들려오는 숨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 찰나의 모든 행동이, 모든 순간들이 이 아이의 생명의 무게감을 하루하루 더해준다.
망고는 나의 보물이자 나의 모든 것, 즉 전부가 되어주었다. 집에 가면 날 기다리고 또 반겨주는 망고가 있기에 내 하루의 끝은 늘 따뜻하고 사랑이 충만하다. 지금까지 나의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었듯 앞으로도 나와 함께 남은 생을 걸어갈 내 동반자인 망고. 집사와 반려묘와의 관계를 넘어 ‘가족’이 된 우리에게 앞으로 펼쳐질 내일도 오늘처럼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매 순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