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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글씨 Feb 09. 2023

내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있는 너




 한 때 아침이 밝아오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때가 있었다. 출근이 너무 싫었고 데칼코마니처럼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너무 버겁고 지쳤던 때였다. 그때의 난 시들어버린 풀처럼 힘이 없고 생기조차 없었다. 먹고 걷는 것조차 귀찮고 힘들어 누워만 있던 정말 무기력한 삶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그런 무채색 같던 내 하루를 단기간에 바꿔놓은 건 다름 아닌 반려묘 망고였다.


 아침 해가 떠올라 눈이 부실 때쯤이 되면 코와 얼굴을 간지럽히는 긴 털이 살랑거리고, 얼핏 들으면 코 고는 소리처럼 들리는 기분 좋은 고로롱 소리가 들려온다. 배 위에선 기분 좋게 꾹꾹 누르는 느낌이 나고, 그다음엔 귓가와 얼굴에 촉촉한 코가 닿아온다. 기분 좋은 느낌에 게슴츠레 눈을 뜨면 햇빛을 받아 예쁘게 빛나는 망고의 호박색 눈이 보이고 내 손은 자연스럽게 망고의 턱 밑 쪽으로 향한다. 내 손길에 기분이 좋아진 망고는 더 크게 고로롱 소리를 내곤 한다. 그러다 시끄러운 알람이 울리면 알람을 끄고 일어나 망고의 아침밥부터 챙기기 위해 주방으로 향한다. 식기 위로 달그락 거리며 떨어지는 사료와 망고가 좋아하는 참치 캔 냄새, 그리고 유산균을 섞어 잘 비비고 있으면 망고가 다리 부근에 얼굴을 비비며 얼른 달라고 재촉을 하곤 한다. ’알겠어, 밥 먹자. 우리 망고 밥 먹자!‘ 하며 망고의 식사 지정석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까만 꼬리를 바짝 세우고 내 뒤를 따르다 앞질러서 먼저 가 기다리는 망고를 볼 수 있다. 그런 망고의 모습을 볼 때면 아침부터 나도 모르게 하하 소리 내어 웃으며 하루의 시작을 호탕하게 웃으며 시작하게 된다.


 맞이하기 싫었던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도록 바꿔준 망고는 하루의 끝도 긍정적으로 바꿔주었다.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망고는 꼭 침대로 뛰어올라와 나와 남집사 사이에 누워 자리를 잡곤 했다. 사람처럼 자기도 베개를 베고 싶어 했고 이불도 꼭 덮어줘야 했다. 원래는 우리 이불 위에 전용 담요를 깔아줬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애착담요는 찬밥 신세가 되더니 기어이 자기도 꼭 함께 같은 이불을 덮어야 직성이 풀리던 망고였다. 그러다 결국 우리 베개를 뺏기는 지경에 이르자 남집사는 망고 전용 베개를 사 우리 사이에 야무지게 놓아주었고, 자신의 베개가 생긴 망고는 제법 맘에 들었는지 곧잘 써주곤 했다.


 그 맘때쯤의 나는 자기 전에 핸드폰을 하거나 다음 날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쉽게 잠에 들지 못했는데, 망고가 침대 위로 올라온 후부터는 이상하리만큼 쉽게 잠에 들곤 했다. 아마 망고를 보느라 핸드폰을 멀리하고, 망고의 애교에 심취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 함께 잠이 들고 푸르스름한 새벽녘에 잠깐 잠이 깨면 옆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와 얼굴 부근으로 느껴지는 새근새근 한 숨결, 그리고 고양이에게서 풍겨오는 따뜻한 체온으로 인해 어느새 다시 까무룩 잠에 들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단잠에 들고 일어날 시간 즈음이 되면 망고의 고로롱 소리에 눈을 뜨고 새 하루를 맞게 된다.


 망고는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하나씩 바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신기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망고와 함께한 후부터는 당연한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고,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 아이러니함 속에서 그 순간순간에 적응하며 살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아이를 ‘사랑’ 하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 반려동물이 아닌 정말 가족 그 자체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 아이에게 맞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누군가는 내게 유난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내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난 좀 떨면 어떤가, 한 생명을 반려하는 일이 이토록 찬란한 것인데.



침대 이불 위에서 남집사와 함께 낮잠을 자던 망고


나와 남집사 사이에 누워 이불을 꼭 덮고 잘 준비를 하는 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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