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1
싸우기 싫어요
평화주의자니, 평화를 지향한다느니, 스스로 말하고 다니지만, 알고 보면 나도 전공의 시절 쌈닭이 아니었나 회상한다. 화가 많아지는 시절이 있다. 아마도 전공의 시절이 특히 그렇지 않았나 싶다. 벌써 10년도 넘은 시절이다. 그때 여기저기 싸질러 놓은 글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쓴 글인데 무슨 일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호의를 그저 호의로 받아주면 좋을 텐데, 무시당하거나, 짓밟히거나, 거짓 혹은 부담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참으로 마음 아프고도 진 빠지는 일이다. 진심은 통한다더니 다 거짓부렁. 일방적 호의에 대한 긍정 반응을 기대했던 내 잘못.
아무도 내 말은 듣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관심조차 없을 터. 말해 봐야 오해만 늘 뿐. 바보가 되었으나 어리석진 않을지어다. 한쪽의 말만 듣고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 한들, 그게 뭐 대수란 말이더냐. 알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지구를 지켜라. 평화는 너의 몫.
슬플 때는 오히려 잘 울지 않는다. 억울하고 분통하면 눈물이 나지. 말하려면 변명 같고 나의 잘못인 건 아닐 때 눈물부터 난다. 마지막 동맹의 끈 같은 것이 퍽, 끊어졌다.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 평행선을 긋고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갖은 짜증을 다 받아주다가 딱 한번 성질을 냈더니, 버럭 하는 것 좀 봐. 오해를 풀려고 하면 그 오해는 오히려 더 커지고 만다. 난 그럴 때마다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지만 더 악화될 뿐이다. 그냥, 그렇다. 오기 부리는 것도 싫고, 분쟁도 싫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놔뒀으면 좋겠는데. 날 좀 들들 볶지 말아 줬으면. 왜 남들은 다 예견했던 고난의 길을 굳이 선택한 것인지. 허허, 왜 사냐건 웃지요-
뭐가 그리 화가 나는가
내게 그리 중요한 사람인가
참으로 손발이 오그라든다. 정말 힘들었나 보다. 지구를 지키란다, 왜 사냐건 웃는단다, 하하. 나의 흑역사 20대에는 바로 위 전공의와 대판 싸웠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신과 병동 간호사와 싸웠다. 폐쇄 병동의 그 간호사는 정신과에만 있어 타과 의사에 적응을 못하고 무례한 행동을 했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차팅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여유가 없었다. 사이가 나쁜 2,3년 차 사이에서 교수님들이 전공의의 눈치를 보곤 했는데 그게 지금도 너무나 죄송스럽다.
지금은 교수가 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전공의들 간의 싸움은 여전히 ing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2년 차 두 명 중 한 명이 3년 차와 한 패 먹고 나머지 2년 차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고 편 가르기는 세상 어딜 가나 존재한다. 전공의들은 보통 한 해 건너 전공의끼리 친해진다. 아래위로 대판 싸우고 그 아래와 공공의 적을 만들어 편 먹게 되는 것. 나의 전공의 시절, 바로 아래와 바로 위가 편 먹고 나만 홀로 힘든 시절이 있었다. 의국 내 누구와도 일상을 공유하거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고 그땐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도 버티고 또 버텼다. 또 한 해가 지나 두 해 아래 전공의들이 들어오고 나서야 조금 숨통이 틔였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금의 나는 그땐 그랬지 이러고 있네.
지금은 왜 싸웠는지, 무엇이 그리 힘이 들었는지, 사실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당시의 글을 보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들은 그저 나와 맞지 않았다. 지금도 그들은 나와는 맞지 않은 성향 그대로일 것이다. 나 역시 그대로이겠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역시나 다시 부딪히겠지만 그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아마 그들에게도 내가 무척 밉고 힘든 사람이었을 테지만, 나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우리들은 맞지 않았을 뿐. 아직도 되도록이면 그들을 피한다. 부딪히기 싫은 건 당연하다. 나를 힘들게 했고, 그 시절 불행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괴롭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충분히 빛나는 사람들이고 잘난 사람들이지만, 서로를 갉아먹던 시절을 함께 겪었을 뿐이다.
가끔 들여다보는 그들의 SNS를 보면서, 행복을 기원하기로 하였다. 나를 힘들게 했고,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그들이지만, 그때 우리들은 그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를 용서하기로 한다. 그때 그 시절의 나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대견하다, 잘했다. 힘든 시절, 잘 이겨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