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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an 09. 2024

슬럼프가 벌써?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제 좀 편하네, 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어김없이 시련은 등장한다. 일주일 만에 벌써 두 번이라니. 심지어 모두 '초응급' 뇌경색 환자다. 신경과의 꽃이자,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질환. 응급할수록 머리는 차갑게, 몸은 침착하게,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조바심 내는 순간 실수가 생긴다.


범실이 나는 이유는 침착하지 못해서다


테니스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내일은 위닝샷>을 즐겨 보았다. 거기서 그런다. 잘하던 사람도 실수가 나는 이유는 침착하지 못해서라고. 경기 흐름이 바뀌고, 소위 ‘말리기’ 시작하면 멘탈이 바사삭 무너지면서 침착함을 잃는다. 그렇게, 평소 잘 치던 사람들도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면서, 범실이 생긴다. 평정심을 가지고 침착하게 칠 수 있어야 평소 연습했던 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 복식조에서는 찰나의 실수가 있었거나 실점을 내주었을 때, 나 때문에 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도  평정심을 잃게 하고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 커지면서 의욕이 과해지고 침착함을 잃게 된다. 과유불급이라 하였다. 단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실수 하나에 꽂히어 ‘이제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순간 힘이 들어가고 또 다른 실수로 이어진다.




쫄깃쫄깃한 날이었다. 혈전용해제를 한 시간 동안 달고, 시술까지 들어가는 큰 뇌경색이 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몇 안 되는 응급 상황이랄까. 3시간 이내에 주사 빡! 들어가 주고 8시간 이내에 빡! 혈관 뚫어줘야 한다. 짧은 순간 많은 것을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초응급 상황은, 침착함을 잃기 쉽다. 침착하게 하나 둘 가능성을 생각하고 금기가 되는 것과 적응증을 떠올리고 빠른 시간 안에 처치를 해야 한다. 나의 오더만을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다른 의료인이 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일수록 여유 있게 생각하고 침착하지 않으면, 판단에 미스가 생긴다.


시술은 병원마다 다른데 내 근무지는 신경외과에서 한다. 신경과 의사는 혈전용해제 달고 시술과에 어레인지 해주면 일단 숨은 돌릴 수 있다. 1시간 동안 주사가 다 들어간 이후에는 타과의 시술 결과를 같이 기도 손 하고 빌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안지오실을 들락날락하며 결과를 훔쳐본다. 혹여 방해가 될까 싶어 몰래 보다가 나온다.


"코드 블루, 안지오실" 안내 방송이 울린다.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두다다다 달려가서 내 환자 소식이 아닌 걸 알게 되자마자 쓸어내리는 가슴. 이제 조금 한가해진다 싶어서 책을 펼치자마자 이 사태들이 벌어졌다. 이날의 시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고, 환자는 꽤 좋은 예후로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병실을 옮기던 바로 그날..


두둥, 또 왔다. 대망의 뇌경색 시술 케이스가. 이번에도 2시간 내에 당도하였고, 혈전용해제를 써야 하는 환자였다. 비쩍 마르고 심방세동이 있던, 말 못 하는 우측 편마비 할머니. 며칠 전처럼 결과가 좋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불운하게도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2시간 정도 개통을 시도했지만 종국에는 열리지 않은 중뇌동맥 분지 하나. 다행인 것은, 혈전용해제가 덕분에 분지 하나는 개통되었다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때가 있다. 설명하는 환자마다 소소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타과와의 협업도 잘 안 될 때. 일적으로 슬럼프에 빠진 상태로 볼 수 있으려나. 결과가 좋았다면 이렇게까지 지치지는 않았을 텐데. 힘든 하루였다. 응급에서 벗어나 근무 환경을 바꿔 볼까도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은 정신적인 피로감으로 이어진다. 쉬고 싶다. 오랜 기간 달렸고, 열심히 해왔으니 이제는 좀 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하다가 어느 날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온다. 슬럼프라고 한다. 운동 경기 따위에서,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저조한 상태가 길게 지속되는 일, 경기가 향상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제 1달 차에 접어든 테니스 어린이가 슬럼프를 벌써 논하기에는 너무 빠른 감이 있지만, 이 연재물을 얼마나 더 써낼 수 있을지 모르기에 그저 생각날 때 쓰기로..)


7회 정도 신나게 죽죽 진도를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8회 차에 영 부진하다. 노곤한 오후. 망가지는 자세. 한 달 만에 뭔 슬럼프? 어이없는 상황이다. 팔이 아픈 것은 고사하고 그래도 마사지와 스트레칭으로 어느 정도 극복을 했는데,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너무 생각 없이 쳐서일까. 서브를 연습한답시고 백핸드 포핸드 연습을 부실하게 해서인가. 몸에 제대로 익히지 않은 자세는 변화무쌍하기만 하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를 때가 초심자의 운으로 더 잘 쳐지는 이상한 현상이었던가. 오히려 첫날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맛집이 맛집이 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변하지 않는 일관된 맛’이 아니던가. 변함없는 일관된 바른 자세가 아니라 들쭉날쭉 컨디션 따라 변하고, 서브 연습 좀 했다고 포핸드를 못하고, 공 위치 안 맞다고 자세 무너지고, 팔 조금 아프다고 못하고. 핑곗거리가 무성하다는 것은 실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소리다.


슬럼프는 알고 보면 슬럼프가 아닐지도 모른다. 발전의 한 과정일 뿐일 수도 있다. 슬럼프를 통해 사소한 변화를 꾀하고 그 변화로 한 단계 도약하기도 한다.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지만 발전하는 중이다. 슬럼프를 겪지 않은 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근무환경에도 사소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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