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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r 05. 2022

지인을 오진하였다.

편협이 부른 오진, 이어지는 죄책감




아는 사람을 오진하였다.


60 후반의 여자였고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었다. 당뇨가 있었고 평소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진료에 다소 편협한 생각을 했던  같다. 다리에 점점  힘이 없다고 했는데, 오랜 당뇨가 있으면서 다발성 신경병증이 오면 실제 근력이 괜찮아도  빠진다, 힘없다고 표현하는 어르신들이 많았고, 실제로 까치발 걷기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데다가 신경 검사에서도 다발성 신경병증이 보여서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던  같다.


당시에 근전도를 따로 더 하지 않았던 것이 나중에 죄책감으로 남은 것인데, 사실 초기 루게릭병은 실제로 오진율이 높다. 다른 신경외과 의사와 신경과 의사 그리고 재활의학과 의사 등의 많은 오진을 거쳤고 나 역시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큰 위안이 되지 않고, 1년 채 되지 않아 종국에는 루게릭병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으로 진단이 되었다는 것, 또 1년이 채 되지 않아 호흡 부전으로 일찍 사망하였다는 것은, 내게 큰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봐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고, 본인은 자꾸 나빠지기만 할 뿐 해결은 안 되고, 지인 찬스까지 써가며 여기저기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었는데 예민 쟁이 취급만 당하고 결국에는 루게릭병이라니.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란, 점점 근위축이 진행하면서 근력이 감소하고 힘이 빠지면서 호흡근까지 침범하게 되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런 병이다. 내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하루빨리 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직까지는 치료가 어렵고 정신은 멀쩡한데 내 팔다리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야 만다. 그 당시 워낙 많은 오진을 거쳐 왔던 나의 지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고, 나도 대놓고 미안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5년이 흐른 지금에도 내겐 뭔가 모를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내가 진단했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환자를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아주 조금은 몇 달 덜 고생하고 진단을 앞당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엔 대학병원을 가고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 치료를 하고 조언을 구했겠지만. 좀 더 성실히 임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일말의 가책이 나를 따라다녔다.


종합병원에서 루게릭병을 진단하게 되는 일이 왕왕 생기는데, 물론 그 조차도 오진일 때가 있었지만 -최종 진단은 비전형적인 만성화된 중증 근무력증이었다. 오히려 치료 가능한 병이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 루게릭병이 의심되니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라고 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정밀 검사를 받아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할 때 얼마나 심란했는지 모른다.


많이 해봤어도 환자의 사망 선언은 할 때마다 싫고 피하고 싶고, 좋아질 리 만무한 병들을 진단하고 설명할 때도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은지.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신경과를 했을까. 왜 진단해 놓고 답도 없는 것들을 설명하며 마음 졸이고 심란해해야 하는 걸까.


그런 병들이 이렇게나 많은 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희망적인 과를 선택했을 텐데. 정상인의 건강을 케어해주는 과를 하거나, 도려내고 잘라내어 치료해줄 수 있는 과를 하거나, 환자를 보지 않는 과를 선택하거나, 회복탄력성과 가능성이 어마어마한 소아를 보거나, 보람찬 여러 다른 경로가 있었을 텐데, 생각하게 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


물론 좋게 생각해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지의 분야이니, 내가 그 길을 개척해서 인류 신경학 발전에 큰 획을 그어볼 수 있지 않겠냐 할 수도 있다. 물론 맞다.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토록 지리멸렬하게 치료되지 않는 환자들과 함께 늙어가면서 지금까지는 좋은 소리 한번 못해줬지만, 세월이 흐르고 내가 열심히 연구를 하면 언젠가는 그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신경학 역사에 한 획을 긋고 희망찬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뇌와 신경의 세계가 아닌가! 20대엔 그리 생각했던 것 같다. 30대부터는 별생각 없는 신경과 의사의 삶을 살았고, 하루하루 버텨내기에 급급했다. 새로운 지식 함양도 없고 종합병원에서 생존을 위한 지식 습득만을 하며, 하루하루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검사상 큰 문제없는데도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는 예민한 사람을 만났고, 평가에 임하기도 전에 한 꺼풀 막을 씌워서 보게 된 것이다. 안주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항상 그래 왔다고 해서, 매번 그런 게 아닌 것이 의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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