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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Apr 09. 2022

예기치 못한 일에 대한 불안

응급과 육아



응급실은 내 루틴을 깬다. 육아도 내 루틴을 깬다.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만들어낸다. 나와 아이의 루틴은 주중/주말 요일 별로 정해져 있는데, 응급실에서 들려오는 전화는 나와 아이의 루틴을 깨 버린다. 아이의 숙제를 봐주다가도 병원에 뛰쳐나가야 할 때도 있고, 전화기를 붙들고 CT나 MRI를 보며 차후 계획을 알려줘야 할 때도 많다. 전공의 시절부터 응급실 전화는 나의 루틴을 깨고, 기분을 망쳤다. 내게는 휴직을 하고 첫째만 돌보던 1년의 세월이 있었다. 응급실에서 벗어나 후레이! 를 외쳤지만, 육아에 매진하는 동안에도 예기치 않은 일은 여지없이 일어났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아기 울음소리에 고무장갑을 탁 내던지고 뛰어가야 했고, 책이라도 조금 읽어보려고 펼치는 순간, 자던 아이가 칭얼대서 하려던 일을 중단해야 했다. 아기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온전히 내 시간을 관리하기는 힘들었다. 살아가면서 가장 변수가 많았던 투 탑이 바로 응급실 콜과 아기 울음소리였다.


내가 그렇다고 굉장히 계획적인 사람이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나는 여행을 갈 때에도 그저 비행기와 숙소 예약만 해두고, 아무 계획도 없이 갔다가, 새로 생기는 변수에 적당히 적응하며, 나름대로 재미나게 잘 놀다 올 수 있는, 그런 무계획의 사람이다. 둘째의 점심 낮잠을 재우러 잠시 차를 태웠다가, 스타벅스의 드라이브 쓰루를 지나면서 본의 아니게 아이 둘 다 잠이 들어버리면, 이대로 1시간 더 달려 벚꽃놀이나 가볼까? 하고 훌쩍 타지방 도시로 떠나버릴 수도 있는, 그런 즉흥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과 육아는 여전히 예기치 못한 불안을 안겨준다. 불안도가 낮은 편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은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종합병원 응급실 당직이 지속되는 한, 나는 이 불안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육아에 있어서도 아이가 커가면서 어느 정도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 되었지만, 가끔은 일하는 중에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울려 아이가 토했다거나, 두통으로 양호실에 가는 바람에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거나, 갑작스레 열이 난다며 데리고 가라고 할 때도 있다. 일하고 있는 나는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이 여전히 생긴다. 아이 둘은 붙여만 놓으면 싸워대고, 한 번도 싸워본 일이 없던 내게는 이런 상황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예기치 못한 싸움으로 루틴이 깨지고 모두가 불행한 얼굴을 한다.


응급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보면서, 이건 내 행복에 누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응급실이 없는 곳에 가서 일해야지, 다짐을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신경과의 꽃은 또 응급이 아니던가. 외래만 보는 곳에 가서 근전도만 적당히 해주면서 입원 환자도 보지 않으면, 몸은 편하겠지만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장담은 못하겠다.) 환자를 보면서 깨달음도 얻고, 브런치도 쓰고, 공부도 가끔 하게 되니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자 싶다가도, 응급콜 받고 시술하러 뛰쳐나갈 땐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기도 하고. 이랬다 저랬다, 갈팡질팡의 연속이다. 그나마 초반에 당직 때마다 전화를 혹여나 받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핸드폰을 내내 붙들고 있던 예전의 내 모습에 비하면 지금은 불안도가 많이 낮아진 편이다.


육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키워 놓고 나니 아기 때에 비해 예기치 않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는 발생하고, 적응할만하면 또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로 아이들이 어서 빨리 좀 컸으면 싶을 때도 있다가, 예쁜 행동과 말을 할 때는 또 제발 천천히 컸으면 싶고. 양가감정은 여전하다. 이제는 갑작스러운 응급 상황의 예기치 못한 일보다는, 남들과 다른 행보를 걸을 때의 불안도가 더 높아지는 듯 하지만. 앞으로 또 다른 예기치 못한 뭔가로 이어지겠지.


생각해보면 나는 인턴 때부터 늘 했던 말이, ‘의사는 체질에 안 맞아’였던 것 같다. 다른 일을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꾸역꾸역 전문의까지 따게 되었고, '응급은 질색이야' 하면서도 신경과를 하고 있다. 남들이 으레 생각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함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의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게지. 물론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부터는 ‘육아는 나와 안 맞아’를 더 많이 말하고 다녔던 것 같지만. 그렇게나 안 맞는 업을 두 개나 이고 지며 살고 있는 나는, 스스로 매우 대견해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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