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은별 Toni May 05. 2022

셰프의 집

가족의 술 문제로 고민하는 그대에게

'셰프의 집'은 말 그대로 셰프라는 이름의 남자가 소유한 집이다. 바닷가 앞 이 작은 집은 특별할 게 없다. 빈집이라고 했으니 칙칙하고 음산한 외양을 한 채 쓸쓸한 정서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집이다. 그러나 바다라는 수식어 때문인지 내 머릿속에 그려진 집의 이미지는 오히려 환하고 따뜻했다. 창을 통해 바닷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햇살이 집 안 가득 드는 집. 잠시 세상일을 잊은 채 쉴 수 있는 곳, 파라다이스가 떠올랐다. 어느새 저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았다. 세프의 집 창가에 앉았다. 바닷바람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따스한 햇살이 나를 안았다.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갱생 시설에서 만난 셰프 덕에 웨스는 이 작은 집에 잠시 살게 된다. 웨스에게도 이 작은 집이 그냥 작은 집은 아니다. 현실이 아닌 술이 주는 안락한 세상에 살고 있는 웨스에게 가능성을 준 집이다. 술독에서 빠져나올 기회, 즉 허상의 세상에서 벗어나 진짜 삶으로 걸어갈 용기를 주는 집이다. 이 집에 살기로 했을 때 웨스의 의지가 얼마나 굳건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혼한 전처 에드나에게 이 집에서 함께 살자고 간청한 것을 보면 일말의 희망은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웨스와 에드나에게 이 집은 파라다이스였다. 먹고 자는 평범한한 일상이 그저 감사했다. 행복했던 먼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게 기쁘면서 한편으로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결국 현실이 됐다. 두 사람은 얼마 후 셰프에게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파라다이스가 사려졌다.

이때 웨스의 행동이 주목할 만하다.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얼른 창문을 커튼으로 가린다. 눈앞에 펼쳐지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다음 행동은 알 만하다. 술을 마실 것이다. 웨스는 이 집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계속 술이 마시고 싶었을 것이다. 웨스에게 어쩌면 이 집은 파라다이스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작은 집에도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내가 미국에 온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여동생과 아버지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동생이 6주라는 긴 기간 동안 미국으로 휴가를 올 수 있었던 건 갑상샘암 수술 후 3개월의 병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동생만 우리 집에 와서 푹 쉬기로 계획했는데 동생은 애들이 눈에 밟혔고, 애들을 데리고 오기로 하자 또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서 결국 아버지까지 모시고 미국에 오게 되었다. 신경 쓸 게 많아지면 동생의 회복에 좋지 않을 게 분명해서 걱정스러웠지만, 연로하신 아버지가 지금 아니면 언제 미국에 와보실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컸다. 결국 동생과 나는 6주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밥하는데 써야 했다.

내 작은 집이 동생에게, 조카들에게, 아버지에게 파라다이스였을까. 내 작은 집이 내게 특별해졌을까. 분명 그랬다고 생각한다. 좁은 집에 부대끼며 살다 보면 일어나는 사소한 마찰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 괜찮았다. 행복하면서 애틋한 마음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어쩌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가족들이 한국으로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이제는 동생과 나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한 시간이 아까웠다. 둘이 아울렛에 가서 쇼핑도 실컷 하고, 어느 날은 펍 야외 테이블에 앉아 달콤한 칵테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땅거미가 지는 하늘 아래, 우리 동네에서, 동생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게 꿈만 같았다. 너무 좋아서 웃다가 믿기지 않아서 눈물이 났다.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 있으니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의 현실이 더욱 실감 났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소중한 시간을 꽉 붙잡고 싶었다.

동생과 내가 외출할 때면 남편이 아이들과 아버지의 저녁 식사를 챙겼다. 고성 사건이 터진 날에도 나 대신 남편이 저녁을 준비했다. 이날 외출했다가 느지막이 집에 돌아온 나와 동생을 보자마자 아버지가 소주를 달라고 하셨다. 불안한 마음이 뱃속에서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연거푸 소주를 들이켜셨다. 식탁에 앉아서 소주를 드시는 아버지를 등진 채 동생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설거지에 열중했다. 아버지가 슬슬 발동을 거셨다.

"정서방이 고생이 많다. 너는 미국에 와서 이렇게 놀러나 다니고 있는데 혼자 일하랴, 집에서 밥해 먹으랴. 너는 좋겠네."

아버지가 동생을 겨냥해 비아냥거리셨다.

"아빠, 정서방이 무슨 고생이에요? 혼자 집에 편하게 있잖아요. 애들 밥해주고 놀러 데리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챙기느라 고생하는 건 나죠. 정서방은 혼자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쉬고 있는 거잖아요."

동생이 항변했다.

"밥하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드노. 혼자 있는 사람이 불쌍하지."

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아버지는 동생이 막 수술을 끝낸 환자라는 사실을 잊은 것일까. 내 동생이 가여워서, 아버지가 미워서 고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안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 산책하러 나갔다.

한 여름밤, 열린 창문 밖으로 외계어 같은 한국어가 미국 작은 동네에 울려 퍼졌다. 이웃이 듣겠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지만 고성은 1시간 내내 이어졌다.

"오늘도 작정하고 술을 마신 거잖아요.“

내가 아버지에게 따졌다.

"뭐, 술도 한잔 내 맘대로 못 마시나!“

"술 드시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싫은 소리 하시려고 술 마신 거잖아요."

"집에 갈란다! 비행기표 날짜 바꿔라!“

아버지가 역정을 내셨다.

"말도 안 통하는데 어떻게 혼자 간다고 그러세요."

"너는 내가 여기 왔을 때부터 말 한마디 상냥하게 걸지 않더라.“

아버지가 쌓인 불만을 털어놓으셨다. 

"원래 성격이 이런데 뭘 어떻게 하라고요!"

"내가 너 미국 가기 전에 엄마한테 돈 해준 거 모를 줄 아나?“

아버지의 불만이 과거를 넘나들고 있었다.

"엄마한테 돈 좀 해준 게 뭐 어때서요?"

"나한테는 엄마랑 연락 안 한다고 말해놓고는 엄마랑 연락하고 지냈다는 소리잖아!"

이혼한 엄마까지 들먹이며 아버지는 술주정 레퍼토리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고 눈물까지 쥐어짜셨다. 평소대로라면 동생과 나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는 수백 번도 더 펼쳐 보였던 일인극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지치시지도 않고 연기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밤은 달랐다. 이날 밤 나와 동생은 묵혀 두었던 감정을 미친년처럼 들추어냈다. 사십 년 간 묵묵히 당신의 술주정을 감당해 오던 삶이 정말 힘들었다며 당신의 자녀가 생애 처음 진심으로 호소하는데도 아버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당신만 억울하고, 당신만 불쌍했다. 오로지 당신의 삶만  돌아보고 계셨다.

셰프의 집에 잠시 살던 웨스는 애초에 어떻게 술을 마시게 된 것일까. 왜 술만 마시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 아버지는 왜 술을 마실까.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실까. 술을 마시면 가게 되는 그곳이 이들에게는 바로 파라다이스인 것일까.

어릴 적부터 술주정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술을 마신 적이 별로 없다. 술을 마시고 만나는 파라다이스가 내게는 없다. 그래서 아버지의 파라다이스와 술주정을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는 술주정에 대한 면죄부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정말 선하다. 힘들게 노동하며 혼자서 세 딸을 잘 키워냈다', 맞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여전히 아버지를 존중하며 딸로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 면죄부 때문에 아버지를 미워하는 내가 미워지는 양가적인 감정에 시달린다. 술을 마시고 도착한 파라다이스에서 아버지는 과연 행복하실까.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을 달래는 아버지, 남에게 싫은 소리를 절대 못하기 때문에 술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시비 거는 아버지, 아버지의 파라다이스에서 아버지가 얻는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곳에서 잠시 만족과 위안을 가지는 것이라고 추측만 해 볼 뿐이다.

그날 밤 아버지, 동생과 나는 미친 듯이 고성을 질러 댄 후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함께 아침을 먹었다. '기억나지 않는다' 모드를 장착하면 만사 해결이었다. 아버지가 술주정에 대해 얼마만큼 기억하시는지 본인이 솔직히 대답해 주시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며칠 후 우리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밤에 다시 아버지가 술을 찾으셨다. '술 드시고 또 무슨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죠.' 나의 이 한마디에 아버지는 화가 나셔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다. 그날 밤 고성 사건을 분명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동생과 함께 방에 갔더니 아버지가 누워계셨다. 이야기 좀 나누자는 우리의 권유를 외면하시던 아버지가 몇 분 후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셨다. 그렇게 술을 드시지 않은 상태로 우리와 대화를 이어 나가셨다. 술 먹는 대신 두 눈을 꾹 감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보자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냥 평소대로 참을 걸 왜 그랬나 싶어 후회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주 후련했다. 아버지를 미워하던 마음이 작아졌다.

현실로 돌아갈 마음이 없는 웨스를 보며 에드나가 담담하게 작별을 준비하던 결말이 떠오른다. 술을 마실지언정 세 딸을 위해 삶의 고삐를 놓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웨스와 대비된다. 가끔 파라다이스에 가 계시더라도 현실에 두 발 딛고 고단한 인생 살아 나간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쓸쓸한 인생에서 가끔은 우리 때문에 파라다이스라고 여기던 순간이 있었기를, 고단한 삶에 소주 한 잔 들이켤 때 아버지가 부디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세프의 집에 묻었던 따뜻한 손길이 마법가루처럼 스르르 사라진다. 내 작은 집에 묻은 따뜻한 손길은 오래 오래 남아 나를 위로한다. 내 집이 파라다이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