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하늘 아래, 학교 운동장은 빗방울에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오늘은 큰아들의 학교 학예회 날.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무대 뒤에서 아들을 찾았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였다. ADHD인 아들은 아침에 학교 가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했다.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는 더욱 그랬다. 급한 마음에 아들을 재촉하며 식탁으로 불러냈다. 남편은 아침밥을 먹이려 했지만, 나는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ADHD 약을 먹이는 일이었다.
3년 전 학예회 때,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긴장하면 티셔츠를 펄럭이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박자를 놓치고 멍하니 서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때 처음으로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고, 소아정신과를 찾아 ADHD 진단을 받았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심지어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까지 아들의 어려움을 지적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괴로워했다. 직장 일과 둘째 아이까지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아들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고, 아들이 최대한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약물복용과 놀이치료를 쉬지 않고 병행해 왔다.
오늘 학예회에서 아들이 또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보이면 어쩌나, 놀림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무대 위에서 아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콩콩 뛰었다.
드디어 아들의 차례가 되었다. 탈춤을 추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몰입해 가는 모습이 기특했다. 마치 나에게 용기를 주는 듯했다. 유치원 학예회 때처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마지막 합창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가사가 마음을 울렸다.
아들의 장애 때문에 그의 가능성을 제한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합창이 끝나고,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교실로 향했다. 나는 잠시 체육관 복도에 서서 아들의 훌쩍 커버린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함께 걸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마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작은 배처럼.
오늘,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키운 건 단지 한 명의 아이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