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모임 자리에 앉아있다. 또다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네. 다른 엄마들의 밝은 웃음소리와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나는 늘 어색함을 느낀다. 아이의 학습과 진로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속으로 조용히 괴로워한다.
“우리 민수는 요즘 영어 학원 다니면서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어요.”
“정말요? 어떤 학원이에요? 저도 알아봐야겠네요.”
엄마들의 대화는 주로 아이들의 학습과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학원을 보내는지, 어떤 선생님이 좋은지, 어떻게 하면 아이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맞장구를 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학부모 모임에서 쏟아지는 학원 정보, 선행 학습 이야기들은 나에게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아직 기본적인 학습 능력을 키우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우리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들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의 중학 진학, 특목고 준비, 해외 유학 등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나는 아들의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마치 달리기 시합에서 모두가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데, 나 혼자 출발선에서도 제대로 서 있지 못한 기분이다. 다른 엄마들의 아이들은 이미 먼 앞서 나가 있고, 나는 그저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아들은 오늘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작업기억이 부족해서인지, 말하기가 어려워서 인지, 아니면 그냥 대화하기가 싫어서인지. 어쨌든 아들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면 내가 직접 다른 엄마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아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마치 아들의 대변인처럼 항상 아들의 입장을 대변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바쁜 와중에도 가시방석 같은 학부모 모임에 최대한 참석하려고 하는 이유다.
모임이 끝나고 회사로 향하는 길, 피곤함과 함께 쓸쓸함이 밀려온다. 회사에서는 나름 능력 있는 직원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집에서는 늘 초조하고 불안한 엄마일 뿐이다. 끊임없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행해 보지만, 현실은 늘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다. 동시에 성공적인 사회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냉혹하다. 나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 끊임없이 양쪽 사이에서 갈등하며,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빛나는 점 하나 없이 캄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