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심쿵 사건
오오!! 아직 죽지 않았어!!
퇴근 후 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공들여 미니스커트에 트위드 재킷을 매치했다. 회사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횡단보도 앞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설마...'
"너무 제 스타일이라... 연락처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애 둘 키우는 아줌마에게 헌팅이라니. 이태원도, 강남도, 홍대도 아닌 분당의 작은 마을에서?그것도 회사 앞이라니.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계속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 동료들 눈에 이 광경이 들킬까 두려웠다.
"아... 아니에요. 저는..."
거절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유부녀라서...'란 말은 하기 싫었다. 왜였을까. 나도 모르겠다. 그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도망치듯 횡단보도를 건너 마침 오는 직행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내 스타일이었다면... 약간의 마음의 동요나 아쉬움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거절했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아직 나, 살아있네...'
회사일, 집안일로 무너진 자존감에 작은 뽐뿌질을 받은 기분이었달까. 그때 버스기사님의 외침이 들렸다.
"아니 이봐요!! 카드 찍고 가야지!!!"
순간 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 보다 스스로가 더 부끄러웠다.
'아, 내가 이 정도로 정신줄 놓고 좋아하고 있었나...'
허탈하고 민망한 웃음이 났다. 오늘따라 카드 단말기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