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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rgency 101

하버드에서 살아남기 #1

by 봄눈 Oct 19. 2024

내가 2008년 8월 처음 보스턴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선배들이 모여서 나름대로 신입생을 환영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대학원 과정으로 미국에 처음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주로 대학원으로 유학 가는 사람은 1세대 한국인이 많았다.

물론 미국에서 학부 졸업 후 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내가 친하게 된 사람들은 한국에서 2008년 신입생으로 합격 통보를 받고

그 통보를 받은 3월부터 딱히 할 일도 없어서 한국에서부터 친분을 다지게 된 사람이다.

미국의 대학은 보통 12월쯤 원서를 받고 2-3월에 합격 발표가 나고

9월에 가을 새학기를 시작한다.


나름대로 1년이상 일찍 보스턴에 와서

타문화와 빡센 학교 생활에 치여 산전수전 겪은 선배들의 이야기는

남의 망한 연애 이야기가 참으로 슬프고도 재밌듯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웃펐고 놓칠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 수 많은 이야기 중에 14년이 지나도 아직 생생히 기억나는 한 가르침은

미국에서 정말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 때 써야 하는 한 마디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생명이 위급한 의료적 상황이나

학교에서 현명하게 상황에 대처해야 할 때는 쓰면 안된다.

어떤 상황에 가능 하냐면 내가 정말 띨빵하게 실수를 해서

되도록 "상황을 제대로 몰랐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귀엽게 넘어가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마법의 한 문장은:


I have no English


ㅎㅎㅎ

처음 들었을 때 우아- 정말 대단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며칠의 미국 문화는 한국처럼 정이 깊지는 않지만

타인, 특히 무언가를 시작하는 단계여서 아직 무언가를 잘 모르는 비기너들에게 매우 관대하고 친절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I can’t speak English 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너무 영어로 완벽한 문장이라서

영어를 못하는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English 자체도 너무 고급지다며

I have no England 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서

아마 내 다음 후배들은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스갯소리였지만..


딱 한 번 내가 버스를 타고 나서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아 혹시 지금이 그 타이밍인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리고 결국 I have no England 를 써야 했던 아주 위급한 상황이 오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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