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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우 Sep 26. 2023

주크박스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 시


주크박스          

 


#1

플라타너스 나무에 앉은 참새 떼가 후두둑 날아간 오후, 그림자 속에 있던 나는 발소리를 쥐고 도둑맞은 책을 찾는다 상자엔 여전히 눈을 떼지 않은 채, 점점 확산되는 운동장을 빠르게 분류한다 열쇠를 물고 있는 상자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열리지 않고

 

#2

파랗게 죽은 커튼처럼 여름을 숨겨 둔 정원에 갔다 상자에 앉아 소리를 죽이고 끝까지 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온전하고 아름답기를 바랐다 고독과 현실은 같은 자리에 뿌리를 박고 있다 나의 시엔 네가 없다 나만 살아 날뛰는 문장들은 일인칭이다 상자에 산산조각 난 고백들이 흘러나왔다

 

#3

뾰족한 지붕 아래를 지나 숲길을 걷는다 상자를 만지던 나는 감색 종이풍선에 마법사처럼 입김을 불어 넣는다 풍선이 터지며 비늘이 벗겨진 무지개 물고기가 쏟아진다 발아래 떨어진 무지개 비늘은 다층적이다 상자의 닫힌 어둠은 그대로다 

 

#4 

물고기 비늘을 들고 겨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묵기로 했다 베일을 쓴 집 주인은 위조지폐는 받지 않을 거라고 했다 폭설 속에 네가 서 있는 걸 본다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고 눈이 멈출 때까지 모서리를 깎고 깎는다 280g 심장의 무게가 될 때까지

 

#5

내 몸에서

불필요한 구름과 물고기들과 일인칭 문장들이 빠져나간 후 

박자를 타기 시작한다

너에 대해



[문장웹진_콤마]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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