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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우 Sep 26. 2023

초인종 버리기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  시


초인종 버리기

 


층층나무가 쿵!

생쥐 쪽으로 잎을 떨어뜨리는 오후

 

나팔꽃을 방에 들였을 뿐입니다

카펫은 낮게 엎드렸고 쿠션은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기분 좀 냈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고약한 입장이 됩니다

 

나팔꽃이 나팔이라도 불었습니까

씨앗들이 달리기라도 했습니까

 

설탕 한 컵쯤 그냥 줄 수도 있는 사이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제가 드린 사과는 열 상자가 넘을 겁니다

사과 껍질 안쪽으로 자라는

사과의 불안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길에서 마주쳐도 진짜 친구가 될 수 없는 건

다 나팔꽃 때문입니까

 

층층나무 그늘이 짙어지고

불만과 항의의 낯빛을 한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코끼리처럼 큰 귀를 가진 당신을 위해

뜬 눈으로 보고서를 씁니다

 

- 나팔꽃 피는 소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법 -

 

  젤리 양말 신기, 사과 스무 상자 준비, 

  앵무새 풀어놓기, 후퇴하지 않기, 

  초인종 버리기, 절대적으로 침착하기 

 

변기 물을 내렸을 뿐인데

소음이 묻어 있는 빗자루가 천장으로 뛰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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