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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블루스 Jul 03. 2022

틀을 깨라.

언제나 질문은 옳다

교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 와서 처음 한 말은 나에게 교수라고 칭하지 마세요, 였다.  주의 선배나 동기들 모두 듣지 않는 강의였고 점수도 짜게 준다는 강의였지만 한참 반골기질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이기도 했고, 중국이라는 나라가 개혁 개방을 외치면서 자본시장에 문을 열었고 러시아 역시 사회주의의 실패를 인정하던 때여서 도대체 사회주의가 무엇인데 이리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아마도 "현대 사회주의 이론과 실제"라는 강의였던 것 같다. 교수님은 교수라는 호칭대신 선생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교수는 학교에서의 직책일 뿐이다. 학생들보다 먼저 공부해서 배운것을 가르치 있으니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머리에 든 것 없는 시골 촌뜨기였다. 뭐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때의 나는 좀 더 그러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선생님이고 대학교는 교수님.

난 그렇게 알고 있었다.

敎授(교수)가르쳐주는 사람

교수는 가르쳐주는 직업을 일컫는 표현이다.

교수님의 설명은 그러했다.

직업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언어는 당시의 문화와 사용자들의 합의가 이루어지면 조금 뜻이 다르더라도 약속이 되는 것이다.

대학은 선생님이 아니고 교수님이라고 부르는게 맞다고 생각한 나는 적잖은 흥미가 생겼다. 그 교수님 덕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자본주의,민주주의가 선이고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악이라고 알고 있던 때였고 김일성은 똘이장군에 출연했던 뿔난 도깨비와도 같은 존재였다. 한 학기동안 배운 사회주의 천국과도 같은 이론이고   주주의는 오하려 소수자를 차별하는 집단이기주의 일수도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제 세상을 좀 살아보니 모든 제도는 실천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다른 결론을 깨닫기도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고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게되는 것이다.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라는 그 한마디가 나의 평생을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배우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제대로된 지식이라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된다.

교수님이던 선생님이던 그게 무에 그리 중요한가 싶다가도 명칭이 사회나 시대의 정신을 정의 할 수도 있으니 꽤나 중요한 논재가 될 수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육은 사회에 잘 적응하라고 만들어졌거나 사회구조를 잘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제도이다.

일정부분 반기를 들거나 의문을제기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틀을 깨고 세상에 맞서야 좀더 나은 세상이 된다.

교육은 "왜?"라는 자세를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반드시 옳고 반드시 틀린 것은 없다.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라고 나는 오늘 나의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싶다.

꼰대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이 말은 자꾸자꾸 하고 싶다.

브런치을 시작하면서 나와 한 약속중의 하나가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는 글을 쓰지않는다, 라는 것이 있었다.나의 생각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잔소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틀을 깨버렸다.

더위를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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