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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Apr 18. 2022

루브르는 재즈, 몽생미셸은 바람 그리고 파리는 이별

40일간의 대학원 졸업기념 유럽여행 5

비가 온다. 추적추적.

겨우 눈곱만 뗀 채, 무거운 몸을 끌고 일어나 어제와는 다른 빵집으로 향했다.

숙소 근처에는 구글 맵스 평점이 4점대인 빵집이 3개나 있다. 목적지는 그중 하나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면 좋은지를 다 알고 있는 구글이 무섭다가도, 결국은 문명의 이기에 굴복하고 만다.


g가 파리에 온 후 가장 많이 한 말을 꼽으라면 '언니, 나 신선한 샌드위치 먹고 싶어'일 것이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려 도대체 신선한 샌드위치가 뭘까 얼마나 신선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이 빵집에는 신선한 샌드위치가 있을 것 같다.

괜히 어제 먹은 빵이 맛없었을까 봐 걱정하며 물으니, g는 어제 먹은 pain suisse가 너무 맛있었다고 한다.

마음을 놓는다.

g의 취향에 맞게, 오늘은 샌드위치도 사본다.

나는 햄, 토마토, 양상추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사고, g는 계란이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에 피스타치오 케이크를 샀다.

정신없이 먹고 창 밖을 보니, 아침인데도 날이 흐려 어둡기만 하다.

아, 몸도 마음도 축축 처지려고 한다. 겨울의 유럽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변화무쌍한 하늘의 색깔에 기를 뺏겨버리고 말 것만 같다.

오늘 고른 빵집 때문인가? 맛은 있었지만 어제 만큼의 감동은 아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 g와 천천히 호텔을 나와 sandro로 향했다.

역시 오늘도, 파리 여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저 g의 출근을 위한 정장이 더 필요하고, 나는 그걸 따라가는 길일뿐이다.


g가 파리에 오기 전, 정장을 살 만한 브랜드로 sandro를 추천했었다. g는 전날부터 인터넷으로 둘러본 후 원피스를 사겠다고 따라오라고 한다.

지금은 파리 전역이 솔데즈 기간이다. 어디 하나 50% 세일을 안 하는 곳이 없다. sandro도 마찬가지였는데, 우리가 들어가자 한국인 직원분이 우리를 금세 알아보고 맞는다.

g도 나도 원피스를 입어보고, 나는 너무 짧고 딱 맞아 사지 않기로 하고 g는 트위드 원피스를 하나 사기로 한다.

피팅룸에서 g가 골라온 원피스 하나를 안 어울린다고 놀렸는데, g가 그걸 고르지 않은 게 못내 신경 쓰인다.


나도 iro에서 가죽 벨트를 사겠다며 이리저리 둘러보긴 했지만,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아 결국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비가 와서 관광객이 모두 실내로 몰렸나 보다. 루브르 입장 티켓을 사는 줄이 장사진이다.

사람은 너무 많고, 분무기를 뿌리는 것처럼 비가 내려 얼굴에 연신 물방울이 맺힌다.

우산이 없는 우리는 그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아무 말 없이 그 상황 자체를 참는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자꾸 새치기를 하고, 오른쪽 어딘가에선 재채기 소리도 들린다.

혹시 코로나일까 싶어 온 신경은 예민해지고, 나는 거기 서 있는 g가 신경 쓰이면서도 짜증을 금할 수가 없다.

그렇게 들어간 루브르는 너무 거대하다.

기억하기로는 드농관에 대부분의 유명 그림이 다 걸려있었던 것 같은데, 드농관 입장 줄 자체를 못 찾겠다.

니케 여신상이 보이면 드농관인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물어물어 드농관을 찾아간 우리는 진이 빠지고, g는 내게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 각자 따로 구경을 하자고 한다.

오디오 설명서는 빌리지 않았다.

미술로 밥을 먹고살 수 있을 줄 알았을 때, 온 루브르를 시험 치듯 가열차게 관람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오늘은 집중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들라크루아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없는 꼭대기층으로 향했다.

한 성자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색 그림자 속 배경은 가난해 보이나 표정은 당당하다. 그림 자체로 사람의 성품을 표현하다니, 뭐 그래서 루브르에 걸려있겠지.

한편으론 이렇게 살면 어떤 방식으로든 기억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어떤 상황에 있든 간에 상관없이 나만의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나아가면 누군가에게는 내 좋음이 닿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작가 이름도 보지 않고, 마음에 드는 그림들 앞에 서서 멍 때리듯 구경한 후 루브르 외부가 내려다보이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루브르에 오기 전부터 결심한 것, 오늘은 루브르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구경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미리 받아온 재즈를 틀고,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냈다.

창밖을 보니, 빗방울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재즈를 듣는다. 왜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말소리, 발소리는 더욱 작게 들린다. 그리고 이어폰에서 전달되는 음악소리는 더욱 크게 느껴져 온 몸에서 노래가 다 들리는 것 같다.

g한테 오늘 루브르에서 어떤 작품이 제일 좋았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폐점 시간이 가까워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물관의 폐점시간에 맞춰 만난 우리는 혹시나 싶어 우버를 불렀다.

이렇게 사람들이 동시에 많이 빠져나가는 지금, 과연 우리에게 잡혀줄 기사가 있을까.

역시나, 아무리 호출해도 답이 없다.


애매한 숙소까지의 거리를 고민하다, 결국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파리 지하철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기름 냄새가 났다.

철로에 기름을 바르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곤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g에게 오늘 어떤 작품이 좋았느냐고 물었던 기억은 나는데, 대답을 들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늘 한 것이 없는데도 너무 많은 것을 한 것 같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는 어제, 일어나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g는 오늘 숙소에서 쉬겠다고 한다.

쉬기 전, 그러면 season에서 그제 못 먹은 브런치라도 먹자며 굳이 끌고 나와 밖 구경을 했다.

오늘은 줄을 서지 않았다.

평일 점심에는 만국 공통으로 맛집이라도 자리가 있나 보다.

구글 평점이 3.8로 내려간 이 곳에서, 굳이 가겠다며 우겨 아보카도 연어 토스트를 먹었다.

분위기가 좋음은 물론이고, 맛도 있어서 놀랬다.

다른 사람의 평점은 그저 선택시 고려할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할 뿐, 내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남의 말을 듣다가 못 가게 된 식당들이 한국에도 많다.

돌아가면, 다시 한번 직접 먹어보고 평가해야지 반성을 했다.


그리고 g와 나는 평일 점심에 여기서 밥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며, 그들의 직업을 궁금해했다.

우리는 대학원을 다닐 때처럼 가설을 세우고, 나는 절충설을 말하며 우리가 말한 경우의 수가 다 조합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우리 정말 지겹다.

밥을 먹고는 &other stories에 들렀다.

여기 한 번만 가보라고, 아직 한국에는 안 들어왔지만 H&M 계열 중 하나라고, 바디워시 같은 것도 괜찮다고 꼬시는 내게 g는 말한다.

"싫어. 언니 난 쉬는 게 좋아."


그래 놓고 들린 가게에서, 지하로 내려간 그녀는 무슨 통일신라시대 때나 차던 것 같은 귀걸이를 들고 오더니, 사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쉬는 게 좋다며?

무거울 것 같다고, 귀가 삼장법사처럼 늘어날 것 같다며 그녀를 말리고선 위층으로 올라가 런던에서부터 살지를 고민하던 목도리를 찾는다.

직원에게 혹시 그 목도리 없냐고 물으니 다 팔렸다고 한다.

역시 살까 말까 할 때에는 사야 한다.

못 사니 괜히 기억이 더욱 미화된다.

엄마는 물건을 죽을 때 가지고 갈 수가 없다는 걸 알지 않냐며, 작작 사라고 하는데 돈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p는 늘 말했다. 빚도 곧 자산이라고... 하 살걸 살걸 살 걸걸 걸걸 걸.

결국 오랫동안 사려고 벼르던 나머지 것들을 샀다. 옆에서 g는 로션들을 발라보느라 여념이 없다.

g의 아버님이 부탁한 캘빈클라인 토너를 사기 위해 세포라로 향하는 길, 언제 보아도 오뗄 드 빌은 너무 아름답다.

특히 오뗄 드 빌에 걸린 프랑스 국기와 BHV PARIS 백화점의 솔데즈 깃발은 꾸며낸 것만 같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저기 들어가 보지만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한다. 대체 그 토너가 뭔데? 진짜 찾아주고 싶은데 찾아줄 수가 없다.

아... 짐이 이렇게 많아졌는데 포르투 어떻게 가지?

진짜 망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는다.


우버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길거리에서는 공무원 퇴직연금 개편 관련 시위가 한창이다.

시위는 이해하는데 15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돌아가야 하다니...

그마저도 다 못 가고 내렸다.

아니 근데, 이해해달라고 하더니 왜 1시간어치 우버 요금은 결제한 거에요?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우리나라처럼 우버도 시간당 요금일까?

그래 그렇겠지. 진작에 내릴걸 그랬다.

시위 꼭 성공하소서. 그래야 오늘의 한이 풀릴 것만 같다.

하지만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잘못 내린 곳에 어제 갔던 빵집의 2호점이 있었다.


오히려 좋아.

쓰려했던 돈을 빵 사는 데에 소비하고, 호텔에 돌아와선 아껴둔 라면을 먹었다.

나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피트니스로 내려가 운동을 했다.

너무 개운했다. 내일은 못할 것 같지만 말이다.

돌아와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g는 휴대폰을 본다.

그리고 g는 노래 하나에 꽂히면 그 노래만 듣는 사람인가 보다.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9와 4분의 3 어쩌고가 연신 방 안에서 흘러나온다.


내일은 7시부터 몽생미셸을 가야 하는데 못 일어날 것 같아 벌써부터 두렵다.

언제 일어나서 트로카데로 광장을 가지?

또르르르를르르르르르르

두르르르ㅡ르르르를르ㅡ

뚜뚜ㅜㄸ뚜뚜뚜ㅜ뚜ㄸ뚜르르르르르를르르르르


알람이 울려도 일어나기가 싫다.


또르르르르를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르를르ㅡ르ㅡㅡㅡ띠이띠띠띠ㅣㅣㅣㅣㅣㄸ띠띠띠띠띠 뚜뚜뚜뚜뜨뜨뜨뜨띠


탁.


g가 방에 불을 켰다.

그 모습에 놀라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내가 g에게 파리에서 붙여준 별명이 하나 있다면 바로 공주님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님처럼 초저녁부터 잠을 잘 자서, 나는 g가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그러나 오늘은 자신이 계획하고 주도하는 몽생미셸 투어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부쩍 비장하고 의젓하다.


나에게 언니 일어나, 언니 준비해, 언니 우리 언제까지 나가야 돼, 한다.

그래, 가기로 한 건 가야지, 몽생미셸이 왜 그렇게 좋다는 건지는 모르는데 가긴 가야지, 툴툴거리며 준비를 했다.


뒤를 돌아보며, g에게 물었다. "배 안 고파? 나가는 길에 빵 사서 가자. 아침 꼭 먹어야 하잖아."

그러나 그녀는 이미 모이기로 한 트로카데로 광장 주변 빵 맛집을 찾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야...


그러나 빵집은 문 연데가 별로 없고, 우리는 내리자마자 가이드님과 합류해 길을 나선다.

g가 예약을 잘해서 버스가 아닌 7인승 벤츠에 탔다.

여자 다섯에 남자 둘, 남자 가이드 한 명의 팀이 오늘의 몽생미셸 투어 팀이다.


그리고 g는 오늘따라 궁금한 게 많다.

"언니, 이 차에는 젊은 사람만 탔어. 혹시 이 차는 젊은 사람을 모아놓은 데가 아닐까?"

"언니 나 휴게소에 들르면 빵 먹을 거야. 언니 뭐 먹을 거야? 언니 내리면 바로 뛰어. 우리 다른 외국인들한테 순서 뺏기면 안 돼."


응, 미안. 난 화장실부터 갈 거야.

휴게소에 들러 그녀의 의도대로 빵을 먹은 후 우리가 처음으로 내린 곳은 괴도 루팡 작가의 고향 '에트르타'다.

절벽에 기암과 큰 파도가 치는 지역이다.

에트르타에 내리니 바람이 너무 불어, 가이드님이 머리를 묶거나 모자를 쓰는 게 필수니 단단히 대비하라고 한다.

나는 비니를 쓰고, g는 캡 모자를 썼다.


바람은 끝없이 불고, 아래 전경을 보기 위해선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g는 자기 신경 쓰지 말고, 체력껏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속으론 헉헉대면서도, 안 힘든척 즐겁게 올라가야 그녀가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싶어 의연한 척 그리고 등산을 좋아하는 척 했다.


절벽의 위에는 바람이 더 많이 불었다. 바람은 세게 불고 쓴 모자는 언제라도 날아갈 것만 같다.

그리고 역시나, 고생한 보람을 주는 풍경이 보인다.

위에는 바람이 불고, 아래에는 아름다운 색의 바다에 큰 파도가 연신 일렁인다.

열심히 사진을 찍긴 했지만, 바람 때문인지 몸이 풍선처럼 불어나 어떻게 찍어도 예쁘지 않다.

그러니 g가 찍히기 싫다며 도망가는 건 당연지사다.

우리는 앉아서 조용히 바다를 본다.

바다는 예쁘고 아름답지만 이유 없이 계속 보면 너무 우울하다. 그냥 내려갈거야.


그런 에트르타가 오늘의 투어 중 가장 좋았다.

9시 투어를 예약했다면 못 올 뻔 했는데, 그랬으면 퍽 슬펐을 것이다.

그 다음 장소는 항구마을 '옹플뢰르'다.

가이드님은 이연희와 정용화가 나온 드라마 '더 패키지'를 보았느냐며, 여기가 거기 나오는 곳이라고 한다.

더 패키지요? 잘 알죠.

매일이 힘겹던 대학원 시절, 내게 한 줄기 빛과 같은 드라마가 아니었던가.

해외도 가고 싶고, 로맨스도 보고 싶고, 큰 고민은 안하고 싶던 나에게는 최적의 드라마였다.

물론 여긴 정용화도 없고, 나는 이연희가 아니지만 뭐 어떤가.

위안이 된 그 드라마의 장소라는데. 나는 그것도 몰랐다.


그리고 밥 때가 되어 적당히 들어간 식당에서 나는 햄버거를 시키고, g는 걀로뜨를 시켰다.

아니 근데 햄버거 맛있다.

햄버거 역시 완전 식품이다. 완전 맛있다.

이내 또 다시 문제가 생긴다.

g가 분명 5유로를 거슬러 받을 수 있을 만큼 계산해서 돈을 냈는데, 가게 사장은 또 5유로를 거슬러 주지 않는다.

아저씨 아시잖아요. 그만큼 팁 아니에요. 팁 넉넉하다 싶을 정도로 드렸잖아요.

포기다 포기야.


몽생미셸에 가기 위한 차에 오르니, g는 오늘 폭발한 호기심이 사그라들지 않나 보다.

"언니, 이거는 뭐야? 이건 어떻게 생각해?"

다시 묻는다.

"언니, 히터 낮춰달라고 말해도 돼?"


내가 말한다. 가이드님 히터 낮춰주세요. 모두가 웃는 차 안이다.

마침내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 몽생미셸에 왔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압도적인 위용의 시각적 경험이 아니라, 코에 부는 짠 냄새인 후각적 경험이다.


세인트 미카엘의 마운트인 것 같다는 g의 추측은 정답이었고 멀리서 보이는 수도원은 말 못하게 아름답다.

가이드님은 다양한 설명을 해 주셨지만, 원래가 반골인 나는 듣다가도 몰래 나와 사진만 찍곤 했다.

성스러운 미카엘 천사의 명을 받아 지어진 온 마을을 먹여살리는 몽생미셸. 끝 없는 계단을 오르고 미로처럼 이어진 곳에서 밖에 펼쳐진 바다를 보는 곳이다.

그리고 바람은 여전히, 내 온 뺨을 두드리고 있다.

건물의 내외부가 모두 너무나 압도적이라 왜 사람들이 이 곳을 추천하는지는 눈으로, 냄새로 그리고 마음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렇게 세계적으로 기념할 만한 관광지가 있는 프랑스는 얼마나 복 받은 나라인가 싶다가도, 이렇게 기념할 만한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념이란 이름 아래 노력하였을까를 생각하기도 했고.

몽생미셸을 원없이 둘러본 우리는, 밥을 먹자 싶어 내부에 있는 관광객용 식당에 들렀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한 어니언 수프 파는 그 식당은, 정말 맛이 없다는 것을.

자그마치 오믈렛은 16유로, 볼로네제는 14유로.

합계는 아주 맛이 없다.

이 돈이면 감자탕 시켜서 밥도 볶아먹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랬나. 혼이 빠진 우리는 길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다른 일행과 모이기로 한 시간에 늦어버렸다.

5분이나 늦게 나타나자, 슬슬 우리가 걱정된 가이드님은 무슨 밥이 그렇게 맛있었냐고 놀린다.

얼굴이 화끈거려 90도로 인사를 하니 조폭같다며 그만하라고 한다.

야경을 보며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 거의 실신 직전의 상태로 파리에 돌아왔다.

역시나, 초저녁이 되니 공주님은 잠에 드셨다.

돌아가면 샤워를 할 힘은 있을까?

그리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5성급 호텔을 예약한 날이다.

g는 요금을 생각하면, 카페 조차도 호텔에서 10분 이내로만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나 비장한지 도보로 11분이 걸린다는 카페도 포기했다.

짐을 옮기고, 오랜만에 홀리벨리에서 브런치를 즐겼다.

역시 파리의 핫플레이스라 사람구경만 하고 올 줄 알았는데, 흐린 날씨가 이럴 땐 도움이 되나보다.

들어가자마자 자리가 있었다.

나는 버터가 육수 그 자체로 변모한 핫케이크를 시키고, g는 야채가 먹고 싶다며 또 다시 건강식으로 주문해먹는다.

아주 오래살겠어.

숙소에 돌아와 발코니 문을 열고, 밖을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마침내 입이 열린 g는 저렇게 말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조잘거린다.


근데 저녁은 한식 먹으면 안될까?

g에게 간절히 부탁하여 한식을 먹고 돌아와서는, 호텔 1층 바에 앉아 술을 마셨다.

이 호텔이 유명한 이유는 1층 바가 인싸들의 성지이기 때문이라는데, 우리는 그런 것에 아랑곳도 하지 않고 감기에 걸리면 끝장이라며 온 몸을 칭칭 감은 채다. 그렇게 술을 마시곤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노곤함을 풀었다.

점점 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지고 있다고 한다.

내일은 파리를 떠나 포르투갈로 가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마음이 혼란하다.

그래도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야경은 아름답고, 호텔 침대는 푹신하다.

g는 왠일인지 10시가 지난 지금도 깨어있고, 나는 한가로이 p와 통화를 한다.

내일의 일은 내일 걱정하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은 그만 사먹자.


그렇게 파리의 마지막 밤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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